[낱말의 습격]달맞이꽃에 관하여(169)

1. 풀이라 부르기엔 너무 우뚝 자라있는 줄기 잎겨드랑이에 작은 꽃잎을 내는 너는 평생 내세우지 못하는 마음인가 꽃잎을 한껏 밀어올려 사랑을 붙잡아야 할 짧은 꽃시절이리도 내숭이냐 부끄러이 고개 숙였다강원도로 가는 기차 창밖에 달맞이꽃밤을 기다리며 꽃잎을 닫고 있었다눈을 감은 여인처럼 고요한 얼굴아니 눈 닫힌 꽃잎 속에 천만 가지 두려운 생각들가만히 당신 생각이 났다 2.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인데달맞이는 왜 달바라기가 되지 못했는가달을 기다리며 설렌 그 마음만이름에 담고눈을 들어 한껏 달을 보는그 마음은 숨겨버렸구나바라보는 마음보다바라보기 전의 마음이 더 애절하고서럽지 않던가달이 뜨지 않는 밤에도너는 환하게 피어 달빛을 비추는데어찌하여 너는 달맞이냐누군가 너를 노을꽃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달빛을 받아 피는 꽃이 아니라저녁해를 받아 피어나는 꽃영원히 서로 포옹하지 못하는 해와 달 사이를 오가며사랑의 화분(花粉)을 전하는 너는 꽃이 아니라 하늘나라 나비같은 것이 아니더냐노을이 곱게 꺼져가며 전한 빛의 가루 몇 점을 노랑 꽃잎에 담아캄캄한 숲에서 몰래 숨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달이 뜨기만을 기다렸다가천공(天空)에 사무치던 등불이 걸리면제 온몸으로 지킨 빛을 내던져그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나즉한 소리로 외치는아름다운 엽서 한장이 아니더냐너는 달의 영광에 곁빛 쬐어 사랑을 구가하지 않았다오직 작은 풀몸 안에 노을빛을 키우고 돋워 흔들리는 괴로움을 참으며 심지를 돋웠다부끄럽고 고마워 온몸이 노랗게 달아오른첫날밤 달맞이만큼 달을 사랑한 이 있으면어디 그 빛을 내놔보라 3. 꽃이 일부일처제일 리 없지만꽃에게도 순정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있으리너의 첫사랑은 노을네가 다시 맞이한 사랑은 달빛너를 바람둥이라 하랴간절한 사랑은 모두 첫사랑이라고너를 위로하랴헤어짐을 맛본 이의 사랑은두렵고 고맙고 미안한 달맞이같은 것이다첫사랑을 접은 가슴에 들인환한 달빛이 두렵고 고맙고 미안한 천상과부에게홀로 타오르는 빛을 주었던가천둥치는 사랑 캄캄한 사랑네 빛으로 견뎌내려무나다시 시작하는 이의 사랑은햇빛 절반 달빛 절반저 들썩이는 작은 가슴에 숨긴달맞이같은 것이다 4. 작은 꽃 하나를 밀어올리는 일에도 뜻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신열 앓듯 오래 그리워한 뒤에야 한 송이가 피어납니다. 5. 힘겨운 날 당신에게, 달맞이꽃 바라보며 편지를 씁니다. 가망없는 사랑인들 어떻겠습니까. 마음 깊은 심지에 불을 댕겨 스스로 타올라 한밤의 절망을 밝히는 일. 꽃은 그렇게 사랑합니다. 괴롭지 않다면 저리 꽃빛이 고울 리 있겠습니까. 이 날의 캄캄함이 우리가 함께 지닌 운명의 귀한 일부인 것을.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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