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닭이다. 영어 이름은 치킨(chicken), 한자는 유(酉) 또는 계(鷄). 꿩과에 속하는데 가까운 친척 중에는 칠면조, 메추라기가 있다. 명색이 조류지만 하늘을 날지 못한다. 파다닥 날갯짓을 해봐야 몇m 잠시 공중부양일 뿐이다. 그래도 근본 없는 동네 똥개들한테 쫓길 때는 아주 요긴한 재주다. 시골에서는 여전히 꼬끼오 하는 나의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농부들이 이른 새벽 논밭으로 나선다. 삼복 더위 인간들이 좋아하는 '치맥'의 그 '치'이자, 여름 대표 보양식 '삼계탕'의 그 '계'도 바로 나다. 이처럼 우리는 안팎으로 인류의 부흥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자 3000~4000년 전 이 땅에 태어났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이전 이주했고 당시 이름이 '구구'였다(요즘은 비둘기를 보고 '구구' 하지만 사실은 내가 원조다). 식물의 씨부터 곤충, 도마뱀, 작은 쥐까지 즐겨 먹는데 모래 알갱이가 있는 모이주머니에서 잘게 갈아 소화시킨다. 인간들이 와작와작 씹어먹는 닭똥집이 바로 이 모이주머니다. 콜라겐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두 발은 여성들의 피부를 탱탱하게 해준다는 소문에 당췌 남아나지 않는다. 듣자하니, 1년간 세계 인류가 잡아먹는 동족이 580억마리(2위 오리 20억마리)라니 30년 수명의 우리야말로 인류의 거룩한 양식인 것이다. 그런 우리를 놓고 요 며칠 왜 이리 시끄러운가. 이달 중순에는 '1~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는 계급 논쟁이 일었으니, 평등을 꿈꿨던 동물농장(조지 오웰)의 주역으로서 밤새 홰를 치며 울고 싶은 심정이다. 며칠 전에는 뉴스 출연도 잇따랐다. 게다가 '단독'이란다. 우리도 눈귀가 있어 익히 보고 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문제적 인물인 유대균씨가 도피 중 '뼈 없는 치킨'을 주문했다고 A언론이 보도하자 B언론은 치킨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식품을 주문했다고 전했고, C언론은 치킨을 먹은 것은 맞지만 주문한 사람은 유씨가 아닐 것이라고 알렸다. 3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원인을 따져야 할 시점에 우리가 입에 오르내리니 그저 민망할 뿐이다. 나중에 유씨 거주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보니 치킨은 주문한 적도 없다지 않는가. 이러고서야 어찌 인간들이 우리를 '닭대가리'라며 업신 여길 수 있을꼬. 우리에게는 없는 '양심''염치'따위가 인간에게는 있을 줄 알았지만 그도 아니란 말인가. 내 비록 7초 밖에 기억 못하는 7초 IQ이지만 이 말만은 남기고 홀연히 기름 솥으로 들어가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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