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모기업 감사법인 일치..수임료 인하 빌미도 돼
수임료 변동 추이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조선업황이 안좋았는데 회계법인에서 수임료를 먼저 깎아주니,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네요."올해 감사수임료를 반토막 가까이 낮춘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 관계자의 말이다. 현대중공업 계열 기업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감사수임료를 전년대비 43%나 절감할 수 있었다. 감사를 맡은 삼정KPMG가 감사수임료를 적게 써낸 덕이다. 24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5월 중순 들어 주요 대기업들의 1분기 보고서가 공시되면서 지난 3월 감사인 교체 주기를 맞아 물밑경쟁이 치열했던 빅4(삼일·삼정·안진·한영) 회계법인의 감사수임료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업계의 이목을 끈 곳은 수임료가 43%나 깎인 삼정KPMG다. ◆삼정KPMG 수임료 43%↓..내막은?=삼정KPMG는 올 3월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의 감사인으로 새로 선정됐다. 두 회사는 기존에 삼일PwC와 계약을 맺었지만 모회사의 감사인이 종속회사 감사 결과까지 책임지는 국제감사기준에 따라 감사인을 일치시켰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수임료 인하 폭이 절반에 가까웠다. 감사 계약을 따내기 위해 대폭 낮은 수임료를 써낸 것이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모두 지난해 감사 수임료 2억7000만원에서 1억55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현대중공업의 감사수임료도 7억2000만원에서 6억2000만원으로 14%가 떨어졌다.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는 "기업이 감사보수를 후려치기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공개입찰방식이라 물리적으로 가격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가 어렵다"면서 "회계법인 측에서 가격을 먼저 다운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어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개별입찰 방식으로 했던 것을 3개사가 묶어 입찰을 내다보니 가격이 많이 절감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모기업 감사인이 자회사의 감사의견까지 책임지도록 회계규정이 바뀌도록한 규정이 수임료 인하에 빌미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삼정KPMG 측은 "모회사와 자회사의 감사인이 통일되면 아무래도 코스트(비용)가 절감돼 가격이 낮아질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감사수임료 인하폭이 컸다는 것은 공감하는데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컸다"고 설명했다. ◆업계·당국..감사품질 우려=자발적인 수임료 덤핑에 나서는 회계법인에 대해 업계와 당국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빅4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삼정이 수임료의 절반 가까이를 깎아버리면서 재계약 시즌 감사시장은 패닉상태였다"면서 "회계사가 자신감 없이 수임료를 이렇게 깎아버리면 다른 회계법인에도 안좋은 영향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부실감사를 감독해야 하는 입장인 금융감독원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삼정이 올 감사수임료를 대폭 인하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감사보수가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감사투입 인력과 시간을 많이 들일 수 없을 것이다. 당국이 감사시장에 어떤식으로 개입하면 이러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감사품질보다는 무조건 가격경쟁력을 최고로 삼는 관행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직에 종사하는 한 회계사는 "감사인을 최종결정할 때 가격뿐만 아니라 적격성이나 전문성, 회계법인의 징계건수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근거로 심사하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가격항목에 높은 점수를 줘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가격경쟁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에 공시되는 분기보고서의 'IV. 감사인의 감사의견 등' 페이지에는 외부감사인과의 감사용역 체결현황 항목이 따로 있어 기업의 감사인과 감사수임료를 조회해볼 수 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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