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제를 부추기는 선거제도가 다당제를 가로막아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최근 당의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수할지를 두고서 전당원투표 및 여론조사 실시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새누리당이 기초선거에 공천을 하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안 의원은 전당원투표 및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뜻과 다른 결론이 나오자 "이것이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면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1야당의 공동대표로 화려한 데뷔를 한 안 공동대표의 첫 패배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올해 초만 해도 안 공동대표가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정치적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안 공동대표는 양당제로 대표되는 기득권 정치를 깨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기 때문이다. 안 공동대표는 그동안 여러차례 다당제의 장점을 언급하곤 했다. 차기 대선 1순위로 거론되던 안 공동대표가 다당제에 대한 의지를 내보였기 때문에 그동안 사실상 양당구조 체제로 유지되어 왔던 한국 정치지형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 공동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을 선택함으로써 제3당의 대표가 되기를 포기했다. 안 공동대표는 다당제를 통한 독자노선에서 물러나야만 했을까?안 공동대표는 독자정당을 구축하려 했지만 정당설립의 현실적인 벽에 직면했다. 지방선거에 경쟁력있고 참신한 후보를 내세우려 해도 선뜻 동참하는 후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조직과 자금의 문제 역시 발목을 잡았다. 안철수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높았지만 신생정당을 출범하려 해도 정치적인 모험에 함께 나설 투자자들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어려움은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과 오거돈 전 해수부장관 영입 실패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하지만 안 공동대표의 신생 정당 건설 시도가 실패한 근본 원인은 진정한 의미의 다당제가 도입하기 어려운 선거제도 탓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 단적인 주장이 함축된 말이 '야권분열은 필패'다.정치권에서는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나왔었다.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올해 초에 개헌 논의보다 급한 것은 선거 제도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손 상임고문은 "정치권 내에서 정당 간의 대화와 타협으로 그 갈등이 조정될 때 비로소 사회통합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며 "이러한 정당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남태현 솔즈베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선거제도가 민의를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정치에서는 민의 그 자체만큼이나 이를 드러내는 도구인 선거제도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거제도에 따라 민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1987년 대선에서 우리나라가 결선투표제를 채택했다면 36.6%의 득표율을 얻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 대신 야권 후보중의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도 중대선거구 제도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가 채택된다면 국회의 의석분포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양당체제를 강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에도 결선투표제도가 없기 때문에 여당과 야당은 투표 전에 합종연횡을 해서 사실상 결선투표를 미리 진행해야만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김윤철 경희대 후미나타스칼리지 교수는 최근 진보정의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야권은 뭉쳐야 승리 전망을 높일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주화 이후 유권자는 대표로 힘 있는 자, 실현 능력 보유자로 간주되는 인물과 세력에게 지지를 줘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어서 지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정책이나 성향보다는 승리 가능성을 두고서 유권자들이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참신한 정책과 실력을 가지고 정치에 나서더라도 승리 가능성이 없다면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은 외면하게 되는 셈이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정당에 소신대로 투표할 경우 그 당이 최다 득표를 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리면 그 표는 사표가 되어버리는 정치구조가 낳은 결과다.결국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새로운 정당을 건설해 정치지형을 바꾸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한국 정치가 사실상 양당제로 운영됨에 따라 숱한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여당과 야당간의 극한으로 이어지는 정쟁이 바로 그것이다. 중간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여야는 극한의 정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같은 승자독식 구도에서는 타협은 곧 패배나 굴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과 정당 구성원의 정치 성향이 상이한 경우도 발생한다.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인들이 여당과 제1야당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들 정치인들은 당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 정당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당론에 휘둘려 소신을 꺾어야만 하는 일들을 겪어야만 했다. 사실 안 공동대표의 독자신당 건설 실패는 한 정치인의 실패만이 아니다. 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 등 독자세력화를 걷는 군소정당이 직면한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이 사례 속에는 대변되지 못하는 유권자와, 극한의 정쟁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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