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日野話] 침실의 道는 본성을 따르는 것(35)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35)

"조행부청청계향(朝行俯聽淸溪響)이요아침에 걸을 때 아래로 귀 기울여 밝은 개울 소리 듣고모귀원망청산영(暮歸遠望靑山影)이네 저녁에 돌아올 때 멀리 푸른 산 그림자 바라보네조행모귀산수중(朝行暮歸山水中)에 아침 출근 저녁 퇴근 모두 산수화 속인데산여창병수명경(山如蒼屛水明鏡)이라 산은 푸른 병풍이요 물은 밝은 거울이라재산원위서운학(在山願爲棲雲鶴)하고산에 머물 땐 구름 속에 사는 학이 되고자 원하고재수원위유파구(在水願爲游波鷗)인데 물에 머물 땐 파도에 노니는 갈매기 되기 원하는데부지부죽오아사(不知符竹誤我事)면서도군수 자리 증명서가 내 일을 그르칠지 모르는데도강안자위유단구(强顔自謂遊丹丘)로다뻔뻔스럽게도 스스로 신선처럼 논다 하네""이즈음의 내 생활이 한편에 들어있도다.""그러하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활이 여기 말고 어디에 있겠사옵니까. 물이 있고 산이 있어 물소리와 산그림자를 사람보다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고, 산병풍 물명경을 방안의 물건처럼 쓸 수 있는 곳이지요. 산에선 학처럼 살고 물에선 갈매기처럼 사는 신선의 경지를 일상으로 누릴 수 있다 하겠습니다. 부죽(符竹)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옵니까.""아, 그것은 단양군수로 내려올 때 받은 부(符, 두짝을 세트로 하여 서로 맞춰볼 수 있는 증명서)를 말하는 것이라네.""그렇군요. 이 시의 백미는 강안(强顔)과 단구(丹丘)가 아닐까 합니다.""허허. 어찌해서 그러하냐?""신선이 벼슬을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뻔뻔스럽다(强顔) 하셨는데, 단구(丹丘)라는 것이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뜻도 되지만 이곳 단양의 언덕이란 뜻도 되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에 깊은 맛이 있사옵니다.""두향의 안목을 벗어날 수 없구나.""아니옵니다. 나으리. 송구스럽사옵니다. 다만 감동처(感動處)를 말씀드린 것일 뿐이옵니다.""그래. 오늘은 너도 한잔 받으려무나.""예. 나으리. 저는 사실 아까 저 부죽이란 것이, 나으리와 제가 언약한 그 매화약속을 뜻하는 것이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사옵니다. 그 매화약속이 나으리의 공직생활을 그르칠지 저어하는 느낌을 담으신 것이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허허. 단구(丹丘)라는 신선마을은 낮과 밤이 모두 환하다고 하지. 어찌 낮에만 공명정대하겠는가. 밤도 밝고 바른 것은 똑같지 않겠는가. 붉은 언덕이란 인간의 나신(裸身)을 함의하기도 하니, 그 속에 산과 물같은 자연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아아, 나으리. 과연 그러하옵니다.""두향아.""예.""오늘은 우리가 동방(洞房)을 하기로 약조한 날이니 어떻게 사랑을 나누면 좋을지 기탄없이 말해보려무나.""소녀, 아는 것도 없고 경험한 바도 많지 않아 말씀 드릴 것이 많지 않사옵니다.""배운 것이나 경험한 것으로 말하지 말고, 원하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말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나으리가 침실의 도(道)는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 있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옵니다. 본성이라 함은,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아무런 제어없이 놔두면 광포해지 않겠사옵니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 스스로의 지혜를 믿고 모든 것을 그것 아래 두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 걱정일수도 있단다. 예를 들면 짐승들도 모두 성애(性愛)를 하고 새끼를 낳고 가족을 가지지만, 사랑하는 방식에 굳이 제약을 만들어놓지는 않지. 제어하지 않아도 탈이 안생기는 까닭은, 그것이 생명을 만든 조물주의 큰 설계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어."조물주는 모든 생명을 그 본성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지. 짐승들은 그 본성에 충실하여 삶을 살지만, 사람은 본성 밖으로 이탈하여 다른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다른 욕망을 추구하기도 하지. 그런데 그 다른 즐거움이나 욕망이 진짜 즐거움이나 욕망이 아니며 세상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고 스스로의 삶을 무너지게 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단다. 요컨대 본성을 제어하지 않아서 광포해지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잘 모르게 되었거나 그것에서 함부로 벗어나는 것이 광포함을 부르는 것이라 할 수 있어." <계속>▶이전회차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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