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수요예측 비극적 결말…혈세(血稅) 줄줄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면 바트(BART, 경전철)를 만난다. 도심까지 한 번에 가는 것은 물론 샌프란시스코 곳곳의 카운티를 연결하는 칼트레인(Caltrain)과 연계돼 편리하다. 1970년대 중반 다니엘 맥파든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수요예측조사를 위해 이산선택모델(discrete choice model)을 도입했다. 출퇴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총 6가지의 교통수단을 이용한 출퇴근 방법을 세밀하게 비교 · 분석했다. 2가지 방법은 BART를 가정한 교통수단이었다. 이산선택모델로 분석한 수요 예상 치와 실제 BART 경전철 건설 후에 나온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이산선택모델은 표본조사에 기초해 다수의 선택지, 각각의 속성이 갖는 중요성을 수치로 계산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았다. #2007년 3월 개통된 인천공항철도의 이용객이 당초 예측한 수요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부정확한 것을 넘어 엉터리 수요예측으로 정부는 민간 사업자에게 하루 수억 원씩 운영수익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 #지난 2009년 853억원을 들여 만든 월미은하레일. 안전 검사 결과 차량, 궤도, 교각, 토목 공사 등 전 분야에서 결함이 발견돼 운행 불가 판정을 받았다. 부실공사 때문에 개통도 못했다. 월미은하레일은 철거 검토 중이다. 철거비용에만 약 250억원이 들어간다. 월미은하레일이 철거된다면 1100억원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도로와 철도, 공항 등 지역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치밀한 수요예측조사와 타당성 검사가 반드시 필요한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대충대충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특히 내년에는 지방자치선거가 있어 남발성 공약으로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종우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6일 '계량분석을 통한 공공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검증 및 효율성 제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회간접자본이 적자로 운영되고 있거나 심지어 폐쇄 여부를 검토 중인 것이 많다"며 "이는 지방정부의 재정위기는 물론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소운영수입보장의 덫=우리나라의 경우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기업이 계약을 체결할 때 자체수입으로 운영비가 최소 예상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보전해 주기로 하는 최소운영수입보장(Minimum Revenue Guarantee, MRG)을 맺었다. 사회간접자본 자체수입으로 충당하지 못한 운영비용은 고스란히 지방자치단체의 부채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부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최소운영수입보장 제도를 지난 2009년이 돼서야 전면 폐지했다. 그동안 MRG로 인해 수조원의 혈세가 낭비된 뒤였다.◆곳곳에서 줄줄 새는 혈세=지난 2007년 3월 개통된 인천공항철도의 이용객이 당초 예측한 수요의 10%에도 못 미쳤다. 정부는 민간 사업주에게 하루 수억 원씩 운영수익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 인천공항철도의 운임수입 실적이 5년 평균 예상운임 수입의 6.5% 밖에 안 되는 등 정부의 수요예측이 부정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평균 운영보조금은 지난 2007년 3억6620만원, 2008년 4억5644만원, 2009년부터는 12억6300만 원으로 불어나 오는 2040년까지 총 공사비 4조995억원의 세 배가 넘는 13조8000억원의 적자를 세금으로 민자 사업자에게 보조해 줘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10년동안 지불한 민자 최소운영수입보장 현황.[자료제공=아산정책연구원]

지방공항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천공항은 총 386억원을 들여 신청사까지 마련했으나 중앙고속도로의 개통과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민간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은 공항이 폐쇄되고 공군이 사용 중이다. 목포, 광주공항 역시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승객이 감소해 공항의 적자경영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고 목포공항은 무안공항 개항 이후 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주공항은 당초 김포공항을 대체할 새 국제공항으로 계획됐으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관계로 인천국제공항에게 신공항의 자리를 넘겨줬다. 정부는 매년 50억원의 적자를 내는 청주 공항의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세금 낭비 시대 오고 있다=대부분 지방 도로, 철도, 공항 등의 SOC 사업은 지방자치선거 때마다 봇물 터지듯 제시됐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앞 다퉈 지역 SOC 공약을 남발한 것이다. 내년에 지방자치선거가 있다. 또 어떤 공약들이 대책 없이 나올 것인지 벌써부터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수요예측을 통한 타당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의 하나로 김종우 연구위원은 '계량분석'을 제시했다. 계량분석은 경제 이론, 수학, 통계학을 토대로 한 경제학의 한 분야로 현실성이 입증된 함수 관계를 각종 경제 현상의 구조 분석과 예측에 이용해 정책사업의 추진에 앞서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분석 기법이다. 국토, 복지, 교육, 의료 산업 등 각 분야에서 국가가 수행하는 대규모 공공 투자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사업의 필요성, 효율적 유지관리, 경제성 등을 치밀하게 검토해 투자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김 연구위원은 "계량분석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해결방식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중요한 공공정책 사업에 있어서 계량분석은 현재로선 가장 적합한 타당성 검증 수단"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와 함께 "사회간접자본 건설계획에 대해서는 2~3개 전문연구기관이나 대학이 계량분석을 독립적으로 수행해 타당성 검사와 검증 절차를 거쳐 비슷한 수요예측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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