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김금자 롤팩 대표
1986년 결혼 직후부터 육아·사업과 전쟁해외서 대기업 간판만 봐도 동기 부여돼
김금자 롤팩 대표(사진 제공: 롤팩)
[평택(경기)=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여중생 김금자는 밭으로 나가려는 아버지를 말렸다. "비가 올 것 같아요. 가지마세요." 아버지는 묵묵히 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현관에 선 아버지는 그에게 말했다. "금자야. 게으른 사람은 어두운 하늘 하나만 보고선 일 나갈 준비조차 안한단다. 하늘이 어둡더라도 금방 갤 수도 있는 것이고, 목적지에 도착해 비가 온다면 그때 다시 되돌아와도 늦지 않아. 하나만 보고 판단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게으르게 살 수 밖에 없단다." 어느덧 28년차 최고경영자(CEO)가 된 김금자 롤팩 대표(50ㆍ사진)는 아직도 생생하게 그 순간을 떠올린다. "내 평생을 아버지처럼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어요."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그의 영원한 롤모델이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던 또래 친구들과 달리 김 대표는 1986년 결혼 직후부터 비즈니스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지하 1층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 남편과 함께 아이스크림, 컵라면 등에 사용되는 포장지 사업을 시작했다. 공동 대표이사였던 그는 갓 태어난 딸아이를 사과상자 안에 넣어둔 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한 푼이 아쉬워, 직원들을 다 퇴근시키고도 혼자 밤까지 일하곤 했던 시절이다. ◆새벽부터 논밭 일구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성실함 = 김 대표는 "어느 날, 해외업체로부터 진공포장기 하청 요청이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내가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며 "수십억원을 투자해 연구개발(R&D)에 매진했고, 진공포장필름 기술을 개발했다"고 롤팩의 설립 배경을 말했다. 2002년 문을 연 롤팩은 이제 전 세계 진공포장기 분야의 선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매출의 90%가 수출이며, 세계 최대 가정용 진공포장기 업체인 푸드세이버가 완제품을 가져다쓰고 있다. 특히 두께 0.075mm에 7겹 구조로 압착된 진공포장필름은 롤팩이 자랑하는 대표 기술. 진공 포장으로 보관된 음식은 고춧가루, 건어물 등의 경우 2년까지 최초 상태 그대로 보관가능하다. 김 대표는 "그 어느 기업에도 없는 기술을 우리가 확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이 분야에서는 우리가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세계 최초의 시설을 갖추고 기술을 개발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먼저 가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3남2녀 중 둘째인 그는 옷가게와 쌀가게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새벽부터 일어나 논밭을 일구고 장사를 하는 부모님을 돕다보니 저절로 성실함이 몸에 배였다. 쉽게 주눅 들지 않는 당찬 성격에, 셈에도 밝아 주변에선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며 입을 모으곤 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24시간을 철저히 분석해 일했다"며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을 지켜보며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위해 성공하겠다는 욕망을 가진 그는 결혼 전 일찌감치 운전면허증도 땄다. 여성이 차를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는 "사업을 해서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내 꿈을 위해 면허증을 따두면 기회가 더 넓어지는 것이라 생각해 준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자니까, 어리니까와 같은 말로 스스로 한계를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8년차 CEO인 김 대표는 신뢰와 믿음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가정도, 사업도 신뢰가 없으면 다 깨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해외기업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당초 계약했던 5겹 필름의 수량이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 부랴부랴 수소문한 끝에 7겹 필름을 구해 납품할 수 있었다. 7겹 필름이 더 비쌌지만, 추가 비용은 받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상대 기업은 계약을 취소했다. "상의하지 않았다. 신뢰가 깨졌다"는 이유였다. 김 대표는 "저렴한 비용에 더 좋은 제품을 납품했으니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와는 접근하는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며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이 팔리지 않을지언정, 남들보다 먼저 시장을 예측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낼 때면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 내로라하는 해외업체들이 다 실패한 일을 해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이 우르르 진공포장필름을 개발했을 때는 잠시 수출이 급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중국이 한국의 기술을 많이 따라 잡았다"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강점을 더 살려야 한다. 납기, 스피드, 신제품 개발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고용을 늘리라고 하지만 무작정 인원수를 늘려서는 중국의 가격경쟁력을 못 따라간다"며 "10명이 하는 일을 우리는 1명이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한다"며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우리 형편에 맞는 인력이 필요하다. 그 인력을 통해 부족한 2%를 채워야 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에 가치 둬 = 김 대표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스트레스 푸는 법조차 모르고 일만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지쳤을 때 마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늘 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다고 일확천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구력, 열정, 정확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꿈과 목표를 매일 습관화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가 닥쳐도 주변에 하소연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만들었다.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연아 선수의 사진을 오려 화장대에 붙였다. 책이나 기사에서 읽은 좋은 글귀도 나란히 붙였다. 좀 길다 싶은 글에는 노란 형광펜으로 주요 내용을 표시해 바쁠 때는 그 부분만이라도 읽곤 했다. 꿈과 목표를 매일 되새기곤 하는 그에게 주변의 모든 것이 곧 멘토이자 동기가 됐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 삼성, 현대차 등과 같은 대기업 간판을 보면 그것도 내겐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된다"며 "기업인들은 끊임없는 동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8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순방 경제사절단에 동행했다. 중소기업 대표인 그가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각오를 다졌다. 늘 부모님처럼 살고자 했던 그는 어느덧 대학생으로 성장한 딸의 롤모델이 됐다. 경영학을 공부하는 딸은 어머니와 같은 경영자를 꿈꾸고 있다. 김 대표는 "내 인생을 뒤돌아보며 아쉬운 건 내 딸에게 좀 더 신경써주지 못한 것"이라며 여성 직장인으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그는 "그래도 딸아이가 엄마의 일하는 부분에 대해 인정을 해 주더라"며 "당당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해 기뻤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는 엄마, 아빠가 아이의 교육에 집중하고 몰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육아문제를 남편, 시댁, 친정과만 협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회사와도, 더 나아가 정부와도 협상하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각 회사, 더 나아가 정부 역시 큰 꿈을 품은 여성을 적극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당히 공부해서 시집갈래'라는 마인드와는 구분돼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큰 꿈을 갖고 있는 여성들은 정부 차원에서 기관을 설립해서라도 집중과 몰입을 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들의 전문성을 통해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 먹고 사는 것"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이어 "인재가 필요하다. 사람이 재산"이라며 "절박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대표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여성을 부정하지 말고, 한 발 옆 다른 길을 살피라"고 조언했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부딪히면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육아 등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대신 그는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본인이 절박하면 아이디어는 저절로 나온다. 생각의 틀을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고민해보라"며 "동료, 후배, 선배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롤팩은? 2002년 설립된 롤팩은 진공포장지 분야의 선두 기업이다. 야채ㆍ과일ㆍ생선 등의 음식물을 담아 전용필름(비닐봉지)을 끼우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가 진공 포장되는 에어채널 필름성형 공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미국, 프랑스 등 20여개국에 제품을 공급 중이다. 세계 최대 가정용 진공포장기 업체인 푸드세이버도 롤팩의 완제품을 사용한다. 롤팩의 진공포장필름은 2007년 산업자원부(현 산업자원통상부)가 세계일류상품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롤팩은 이 기술을 토대로 액체류를 보관할 때 사용하는 특수필름인 'BIB(Bag In Box)'란 이중 포장용기도 개발, 코카콜라에 공급 중이다. 최근에는 가정용 진공포장기와 핸디형 진공포장기 신제품을 출시하고 '푸드키퍼'라는 브랜드로 홈쇼핑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김금자 롤팩 대표는? ▲1962년 충남 태안 출생 ▲한양대 경영학과, 경영대학원 석사 졸업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산업기술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이수 ▲1986년3월 신광포장 설립 및 공동대표 ▲1994년1월 인트로팩 공동대표 ▲2002년9월 롤팩 설립 및 대표이사 취임 ▲2003년 은탑산업훈장 ▲2004년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2009년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2010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3년 중소기업인대회 대통령 표창 ▲현 한국무역협회 사외이사<특별취재팀 이정일 부장·이은정·이지은·조슬기나·이승종·박혜정 기자>평택(경기)=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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