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해비타트시민연합 전문위원
가난한 국민들에겐 '의식주' 문제가 바로 민생문제다. 이제 입는 옷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굶어 죽는 사람 역시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기아국가가 아니다. 먹을 게 없어서 노숙인이 되는 게 아니라 집세가 없어서 노숙으로 떨어진다. 선진국 문턱에 왔다고 하지만 집세 걱정, 고액 주거유지비 압박에 시달리는 게 하위 10% '민생들'이 처한 현실이다. 쪽방이나 주거용 고시원이 타워팰리스보다 평당 임대료가 비싸다는 것은 웃지 못 할 비극이다. 1평짜리 극빈주거로 이동해오는 난민들의 규모와 열악한 주거양상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에게 막장 주거공간으로 활용되는 고시원 숫자가 서울시에만도 6000개이고 4년 전보다 2배가 증가했다. 이곳에 사는 국민들만 20만명이 넘는다. 쪽방, 지하벌집, 고시원 사람들은 그나마 월세를 내며 살고 찜질방, 심야만화방, PC방 체류자들은 하루 세입자, 하루 셋방살이 난민들이다. 1평 주거난민들 대부분이 반 실업상태, 날품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린다. 보증금을 저축할 여건이 안되고 부모, 자식, 배우자, 친구들과도 멀어져 철저하게 '빈곤의 섬'에 고립돼 있다. 또한 안정된 주소지를 확보하지 못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혜택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하루 5000원에 쪽잠을 청하거나 수입의 30∼40%를 주거비로 '털어 넣고', 주택사다리 맨 밑 칸에 있는 게 이들이다. 상향주거의 사다리를 밟지 못 하고 점점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의 주거난민들이 100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공공주택 신규공급정책이나 매입임대주택 사업이 있다고 하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 입주하고 싶어하는 대기자는 수백만명인데 매입의 경우 1년 공급물량이 3000여가구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현 정부에서 짓겠다는 '20만채 행복주택'도 "가난한 사람들아 우리 동네는 오지 말라"는 지역님비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거주지가 아니다. 온 가족이 의지할 수 있는 상승의 사다리인 동시에 최악의 빈곤에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버팀목이다. 집이 있으면 가장이 실직해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진 않지만, 집이 없는 가정은 위기에 극도로 취약해진다. 주택문제를 책임지는 정부와 LH는 육지 위를 떠다니는 이 '보트피플'들에게 다시설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 출발이 새로운 '참여형 공공주택' 정책이 됐으면 한다. 공공주택의 수요자들, 공급이 생기면 들어오려고 길게 늘어서서 순번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있다. 공공주택의 개념은 짓고 입주시키고 관리한다는 사업의 범주를 넘어 주거난민의 고충을 해소하는 것에까지 넓어져야 한다. 참여형 공공주택은 1평 주거공간에 25만원 월세를 내고 사는 민생고시원 시민들이 직접 '고시원공동운영조합'을 만들고, 50만원 월세를 내고 사는 원룸청년들이 직접 '협동조합 원룸'을 만들어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참여형의 '고시원, 원룸협동조합'을 공공주택으로 간주하고 국가 차원에서 기반조성예산을 장기 저리로 융자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소형 원룸 협동조합의 얼굴로 나가는 공공주택은 지역님비에도 부딪치지 않고 다급한 지역빈곤주민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나가는 형식이므로 공공주택(협동조합주택) 공급 숫자에 가속도가 붙고 조합원 스스로 관리하므로 이중의 관리 비용이 들어 갈 필요도 없다. 최상의 주거복지정책은 쪽방지역에 도배, 장판 교체해 주고 고시원 소방시설 안전점검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고액주거비부담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라야 한다. '좁은 평수 어두운 방에 살더라도 방세가 저렴하면 좋겠다'는 것이 주거난민들 최고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매우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박철수 해비타트시민연합 전문위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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