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로 7년만에 연극 무대 복귀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잠깐만요. 물 좀 마실게요."지난 달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진행된 공개시연회. 배우 김혜자는 연기 도중 아직 목이 덜 풀렸는지 물을 찾았다. "침이 바짝바짝 말라버렸다"며 목을 축인 그는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이달 15일 개막하는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 중 오스카가 첫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연출됐다. 20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김혜자는 혼자서 오스카, 장미할머니, 페기, 팝콘, 상드린, 엄마 등의 6가지 역할을 연기했다. 소년에서 할머니로, 남자아이에서 여자아이로, 표정과 말투, 눈빛이 자유자재로 바뀌었다.마지막 대목은 오스카가 하느님에게 외치는 기도로 끝난다. "하느님, 왜 사춘기를 원수같은 시절이라 부르는지 알겠어요. 진짜 힘들었거든요. 오늘 소원을 말 할 게요. 페기랑 결혼하게 해주세요. 결혼이 정신적인 거에 속하는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결혼상담소처럼 그런 소원도 들어주시나요? 바쁘게 해 드릴 생각은 아닌데 제가 시간이 좀 급하거든요. 오스카와 페기의 결혼, 찬성인지 반대인지 그것만 알려주세요. 근데, 하느님 도대체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프랑스 작가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의 소설 '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은 백혈병에 걸린 열 살 소년 오스카와 소아 병동의 외래간호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장미 할머니의 우정을 담는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오스카의 인생은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고통스러워하지 않던 그 시절"과 그 이후로 나뉜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부모님을 겁쟁이라고 생각한 오스카는 병원의 장미 할머니에게 의지하게 된다. 어느 날 장미 할머니는 오스카에게 "하루를 10년이라고 생각하며 살라"고 조언한다.함영준 연출가는 "오스카는 앞으로 12일 정도밖에 인생이 남아있지 않은 아이다. 그 때 장미 할머니가 신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한다. 또 하루를 10년처럼 쓰자고도 제안한다. 살면서 시간이 남는 사람은 없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나에게 열흘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할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문제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아니라 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연극은 모노드라마 형식을 취한다. 배우 한 사람이 10여명의 역할을 맡는다. "원작자인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가 80세가 넘은 프랑스의 한 여배우를 위해 쓴 작품"이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함영준 연출가는 머릿속에서 1순위로 배우 김혜자를 떠올렸다. 국내에서는 2005년 초연됐는데, 그 때는 모노극이 아니었다. 함 연출가는 "당시 공연에서는 아이와 할머니 등 여러 배우가 나왔는데, 그렇게 되면 작품의 본질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해 이번에는 모도드라마로 했다"며 "'장미 할머니' 역 때문에 김혜자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막상 연습할 때 보니 아이 역을 더 잘 소화하셨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이후 1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혜자는 "원작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원래 연극 제목은 '오스카와 장미할머니'였는데,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로 하자고 제안했다"며 "'장미할머니'로 대변되는 어른들과 '오스카'로 대변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누구나 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다. 특히 아프리카엘 가보면 왜 이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굶어죽어야 하나 하는 질문이 든다. '왜 삶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거죠, 왜 이러는 거죠?' 사람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거다. 이 작품이 그걸 다 말해줄 수는 없다. 신의 영역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우리의 의문점들을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서 한 번 물어보고도 싶었다. 어떻게 저 분이 전능자란 말인가, 왜 나는 아픈가, 이런 것들을 말이다."처음 연습할 때는 15분 연습하고 쉬어야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이 책 한권을 어떻게 다 외우나"하는 걱정도 산더미같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라고 절망하는 순간도 있었다. 연습 시간도 다른 연극에 비해 오래 가졌다.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서는 세수도 못하고 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꼭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김혜자는 "10대, 20대에는 바보, 멍충이라도 인생을 즐길 수 있지만 늙으면 다르다. 머리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오래 사나 한다. 배우로서 좋은 영향을 조금이라도 끼칠려면 잘 늙어야 될 거 같다. 함 연출가는 "김혜자 선생님은 원래 영적이고 영혼이 맑은 분이다. 이 작품을 통해 무대에서 영혼과 영혼이 교감했으면 좋겠다. '좋은 작품은 매일 신문 읽듯이 읽어라'라는 말이 있다. 익숙한 것들도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는 뜻이다. 이번 작품이 신에게 보내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우리 삶의 하루하루를 돌아보는 성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15일 서울 타임스퀘어 CGV신한카드아트홀에서 개막.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