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키가 훌쩍 커서 180㎝가 넘어 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마에 여드름이 빼곡한 사춘기 개구쟁이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남자 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검정 색 싱글 양복 차림이어서 더 성숙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제 저 아이는 어찌되는 걸까? 난감하기만 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데 나도 그렇지만 옆에 서 있던 아내도 할 말이 딱히 없는 듯 "그래, 많이 놀랐겠다…"만 몇 차례 반복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의연했는데 그래서 더 난감했다. "아침 먹고 독서실에서 시험 공부하다 아빠 소식 들었어요"라며 사고 당시 정황을 설명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올라오면서 오감을 다 막아버린 탓이리라. 어찌어찌 빈소를 빠져나왔고, 차를 탔고, 집에 돌아왔지만 충격은 내내 가라앉지 않았다. 소년의 아빠는 하루 전 북한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다가 추락사했다. 일행에 따르면 혼자 저만치 바위를 올라가다 미끄러져 순식간에 20미터 아래 계곡으로 굴렀다고 한다. 황망하고 어이없는 죽음이다.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남겨진 두 아이였다. 고등학교 3년짜리 딸과 1년짜리 아들. 그 또래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슴이 먹먹했다."집사람이 암 판정을 받았어요. 임파선까지 전이됐데요. 4기라고 하네요.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해봤는데 진원지가 어딘지 찾지 못하겠다고…. 당장 내일부터라도 전신 암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앞이 캄캄합니다." 몇 달 만에 걸려온 전화 너머 후배의 목소리는 거칠거칠 아무런 윤기도 없었다. 건강검진 받기 전까지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고 지금도 특별한 증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후배의 하소연처럼 평범한 주부가 하루아침에 4기 암환자로 바뀐 것이다. "아, 그래, 응, 응"만 되풀이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 집의 열 살짜리와 여섯 살배기가 떠올랐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살면서 늘 당하는 일이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왜 이리 척박하고 허약한 것인지. <치우(恥愚)><ⓒ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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