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박근혜 정부의 '신 5적'

어떤 정부든 성공이 있고 실패가 있지만 이명박 정권에 대해 평가한다면 나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MB 자신이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성공'이라는 구호처럼 무엇보다 그 자신들, 즉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서 대단한 수익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국 정치와 한국 국민들에게 값진 교훈을 남김으로써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건 대통령의 권한이 아무리 축소됐다고 해도 대통령을 뽑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공인의식이 없는 이가 중대한 공직을 맡을 때 한 사회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직면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듭 또 한 가지. 후임 정부에게 행운을 안겨준 점에서 또 하나의 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전임과의 비교를 통한 평가에서 매우 유리한 상황, 말하자면 '기저 효과'를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지금 현 정부의 높은 지지율의 이면에는 아마 상당 부분 이 바닥으로부터의 반등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선물'은 또한 무서운 함정을 파 놓고 있다. 당장은 전 정부와 비교한 반등으로 꿀맛을 안겨주고 있지만 서서히 그 기저효과에서 벗어나 현 정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매겨질 때 축복은 저주가 될 수 있다. 나는 지금의 60%를 넘는 지지율, 그리고 그것이 안겨주는 자신감에서 오히려 위험스러운 조짐을 본다.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태도, 검찰총장을 비협조적이라며 내치는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 교과서 논란에서 드러난 '현대사 바로잡기'의 사명감 등에서 정상에 오른 듯하지만 실은 그 옆의 벼랑길을 보지 못하는 단견의 위태로움을 본다. 나는 그런 점에서 지난 대선 때 지지를 이끌어 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김지하 시인의 시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정권의 부패와 비리를 풍자한 '5적(賊)'이라는 문제작이다. 박정희 정부를 향한 신랄한 비판이었던 이 시에서 40년 전에 배우지 못했던 교훈을 이번에는 제대로 얻기 바란다. 그것은 지금 박근혜정부에 가로놓인 '신(新) 5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신 5적'의 첫 번째는 사이비 보수의 유혹이다. 전임 정권하에서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하향화됐다. 이는 보수에도 불행이었지만 진보 진영에도 불행이었다. 지금 보는 것처럼 진보의 빈곤은 거의 재앙적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보수에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 역사는 대체로 진보가 선도하고 보수가 따라가는 식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보수에 진보를 가르칠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그러자면 보수는 '진짜 보수', '진보(眞保)'가 돼야 한다. 그 '진보(眞保)'라야 진보(進步)를 견인할 수 있다. 사이비 보수와의 단호한 결별, 그것은 '보수를 죽여 보수를 세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사불란(一絲不亂)의 유혹이다. 민주주의는 '불란'의 추구가 아니라 '분란(紛亂)'에 대한 대처다. 열과 오를 맞춘 '질서정연한 사회'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그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 번째는 권력기관을 지배하려는 유혹이다. 지금의 국정원과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다. 권력기관을 지배한다면 권력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권위'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네 번째는 탈(脫)정치의 정치, 군림의 유혹이다. 한국은 입헌군주제가 아니며 한국의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다. 정치의 바깥에 머물며, 정치의 진흙탕에서 벗어난 우월적 지위를 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나라'의 영광에 대한 유혹이다. 아버지의 시대, 그것도 그 빛만큼이나 그늘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아버지의 영광의 추억, 그리고 이를 재현하려는 유혹,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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