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제시 리버모어, 사치와 낭비..원칙을 무너지며 몰락
[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1929년 가을의 초 대박은 제시 리버모어(Jesse Rivermore) 투자인생의 정점이었다. 역사상 누구도 해내지 못한 그에게 언론은 찬사 대신 공매도로 주가폭락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리버모어를 포함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대박 기회였지만 수백만명의 실업자가 길거리로 몰리는 등 암울한 경제상황은 그를 투자영웅보다 탐욕스러운 투기꾼으로 몰아붙였다. 화려한 성공의 그늘도 짙었다. 아내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결국 1932년 결혼 14년만에 이혼을 했다. 리버모어는 곧 재혼을 했지만 평온한 가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리버모어는 낭비와 사치 속에 쇼걸이나 배우들과 흥청거리며 어울렸다. 오랜 정부였던 여배우에게는 혼인빙자 간음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교류도 중단됐고, 얼이 빠진 상태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그의 매매(트레이딩)도 예전같지 않았다. 집중력, 원칙, 열정을 상실했으니 과거와 같은 성공이 따라올리 없었다. 거듭된 투자 실패에 낙담한 그는 우울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급기야 1934년 5월에는 연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1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번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파산을 하자마자 곧바로 재기하던 리버모어였지만 이때의 파산은 달랐다. 한번의 실수로 인한 파산은 금새 회복했지만 열정과 원칙을 잃은 상태에서 거듭된 실패 끝에 나온 결과였기에 회복도 쉽지 않았다. 57세의 나이에 일상 삶까지도 엉망이 된 상태에서 더 이상 재기할 힘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을 수도 있다. 1940년 11월28일 오후 4시30분께, 리버모어는 사무실을 나서 셰리-네덜란드 호텔로 갔다. 호텔 휴대품 보관소 의자에 앉아 32구경 콜트 자동권총을 자신의 오른쪽 귀 뒷부분에 겨냥하고 발사했다. 그는 아내에게 남긴 유서에서 "난 지쳤소. 더 이상 버틸 수 없소. 이것만이 나의 탈출구가 될 듯하오. 당신의 사랑은 내 분수에 넘친다오. 난 실패자요. 정말 미안하오만, 이것만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라오"라며 지쳐서 다시 일어서기 힘든 심신 상황을 전했다. 그의 삶에 대해 혹자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주식 트레이딩과 거기에서 올린 수익을 낭비하는 것밖에 몰랐던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매매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지만 매매로 자신이 돈을 번 것 외에는 기여한 게 없다는 측면에서 정확한 평가일 수 있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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