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시리즈] 리먼 사태 악몽 5주년, 지금은 괜찮은가

[편집자주] 아시아경제에서는 추석 명절을 맞아 그간 기사화된 기획 시리즈 중 일부를 엄선하여 독자 여러분께서 한눈에 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안전한 귀성·귀경길 되시고 풍성한 한가위 맞으시길 빕니다.'745 7th Ave, New York.'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바클레이스 캐피털 빌딩의 주소다. 5년 전만 해도 이 빌딩의 주인은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세계 4위 규모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였다. 그러나 2008년 9월15일 리먼 브러더스는 무려 6000억달러(655조6000억원)가 넘는 부채를 껴안고 허망하게 파산했다. 그로 인해 촉발된 금융위기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기록되고 있다. 일자리 880만개가 사라졌고, 부동산 거품 붕괴와 투자 손실로 가계 자산은 19조2000억달러나 증발했다.①노후자금 절반 날린 기업…불안은 진행형
리먼 붕괴 5주년을 꼭 1주일 앞둔 8일(현지시간) 오후. 일요일이었지만 화창한 초가을 날씨 속에 바클레이스 캐피털 빌딩 주변은 쇼핑객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마침 이곳 앞으로 부인과 함께 지나가던 티머시 앤더슨(58)씨를 만났다. 그에게 바클레이스 건물이 몇 년 전 리먼의 본사였던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들 때문에 내 아까운 노후 자금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뉴욕 인근 뉴저지주의 한 유통체인 배송 담당 매니저로 있는 그는 은퇴에 대비, 각종 금융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왔다. 그 중 상당액은 리먼을 통한 투자 상품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 에 우리 부부가 많이 검소해졌다. 언제 또 그런 일을 당할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한 헤지펀드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는 엘리엇 부르노(34)씨는 사회 초년병 시절 리먼 사태를 월스트리트에서 직접 목도했다. 리먼 사태 직후 그가 일하던 헤지펀드 사무실에서도 줄해고가 이어졌다. 옆 칸막이에 있던 동료들이 경호원들의 감시 속에 짐을 싸들고 사무실 밖으로 내쫓기는 것을 몇 차례 직접 목격해야 했다. 그는 "당시 나는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경제적 불안감 때문에 프러포즈를 2년이나 미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요즘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지만 아직 집을 마련하지 않고 월세에 살고 있다. "맨해튼 주변 집값이 워낙 비싸기도 하고 많은 모기지(주택 자금 융자)를 떠안고 집을 사는 것이 솔직히 아직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타임스 스퀘어에서 열리는 피자 시식 행사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에게 "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퉁명스럽게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리먼 파산 이후 5년이 지난 요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번 달 안에 출구전략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만큼 미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여전히 리먼 사태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리먼 사태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전문가들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뇌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존 테인은 2008년 당시 리먼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던 투자은행사 메릴린치의 최고경영자(CEO)였다. 메릴린치는 경영 악화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인수됐다. 그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보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덜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리먼 사태 이후에도 대형 금융사는 여전히 더 크고 복잡하게 연결돼 외형을 늘려왔다"면서 "이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먼에서 채권거래 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했던 로렌스 맥도널드는 이듬해 리먼 파산의 뒷얘기를 다룬 '상식의 실패(A Colossal Failure of Common Sense)'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됐다. 그 정책 및 위험 분석 전문 애널리스트로 왕성히 활동 중인 그는 최근 CNBC 등에 출연, "위험한 파생금융 상품 거래의 유혹이 이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한편 오는 17일 뉴욕의 한 클럽에선 리먼 파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임직원들이 다시 모여 당시를 회고하며 대화를 나누는 5주년 모임을 갖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②리먼 파산 5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다사다난(多事多難)'. 2008년 9월15일 오전 1시45분(현지시간) 당시 미국 4위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선언한 후 지난 5년 간 월가의 역사는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158년의 역사를 지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월가의 탐욕이 가져온 끔찍한 참사였다.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월가의 탐욕은 죽지 않았음이 확인되고 있으며 99%들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고 외쳤던 글로벌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1%들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지난 5년간 월가의 주요 사건을 일자별로 정리했다. ◆2008년 12월11일: 월가 사상 최악의 폰지 사기를 일으킨 버나드 메이도프가 체포됐다. 메이도프가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이었다는 점에서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메이도프는 폰지 사기로 투자자들에 총 500억달러에 이르는 금융 피해를 입혔고 피해자 중에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 유명인이 다수 포함됐다.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09년 3월9일: 다우 지수가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저점을 확인했다. 이날 다우 지수는 6547.05로 거래를 마쳤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선언하기 직전 주 종가 1만1421.99과 비교하면 6개월 만에 42.7%가 빠진 것이다. 장중 기준으로는 3월6일 기록한 6469.95가 리먼 파산 후 최저치였다. 저점을 확인한 뉴욕 증시는 이후 가파르게 올랐다. 2009년 3월 이후 다우 지수는 연 평균 22% 올랐다. 지난 9일 종가는 1만5063.12를 기록했다. 지난달 2일에는 종가 기준 사상최고치인 1만5658.43을 기록했다. 2009년 3월9일 저점에 비해 139.2% 오른 것이다. ◆2009년 10월: 미국의 실업률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10%를 기록했다. 지난 6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8월 실업률은 7.3%였다. 실업률 하락은 양적완화 축소 논란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2010년 5월6일: 다우 지수가 단 5분 만에 1000포인트 급락했다가 회복한 '플래쉬 크래쉬(flash crash)'가 발생했다. 최첨단 시스템을 활용해 단 몇 분, 몇 초만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초단타 매매가 원인이었다. 사실상 도박판으로 변한 월가의 단면을 보여줘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11년 8월5일: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민간 금융시장의 탐욕과 이를 방관한 정부에 의해 잉태된 참사였다. 금융위기는 민간이 감당하지 못한 부채를 정부가 떠맡으면서 정부 부실화로 충격이 전이돼 가는 과정이었다. S&P의 미국 최고 신용등급(AAA) 박탈은 정부 부실의 위험을 경고한 일대 사건이었다. ◆2011년 9월17일: 뉴욕 월가의 주코티 공원에서 '월가를 점령하라(Cccupy Wall Street)' 시위가 시작됐다. 그해 11월30일 뉴욕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면서 73일 만에 월가 점령 시위는 일단락됐다. 시장경제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현재 부채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위는 결국 극단적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월가 점령 시위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2012년 5월10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이 파생상품 투자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음을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위험한 투자를 자제하면서 금융위기의 승자로 평가받았던 JP모건이 위험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월가의 탐욕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줬다. ◆2013년 3월5일: 다우지수가 1만4253.77로 거래를 마쳐 리먼브러더스 붕괴 전 사상최고치였던 2007년 10월11일의 1만4198.53을 갈아치웠다. ◆2013년 5월22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서 3차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채권 시장은 급락해 당시 1.6%선에 거래되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현재가 3%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③약속만 5년…안전장치는 아직도 없다"부실이 파급되는 연쇄반응으로부터 금융시장과 경제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기는 5년 전이나 마찬가지다."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이사인 안드레아스 돔브레트는 이렇게 말하며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약속이 제시됐지만 실효성 있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돔브레트 이사는 "의원들은 리먼 사태가 얼마나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훼손했는지 잊은 듯하다"고 일갈했다.돔프레트는 리먼 사태 때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독일 책임자였다. 리먼 폭풍에서 살아남아 현재 분데스방크에서 금융안정을 담당한다. 직책의 성격상 금융업의 영역 확장에 가장 강경하게 반대하는 편이다. 여기엔 리먼과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거친 경험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독일 슈피겔은 최근 온라인판에서 돔브레트 이사와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현재 주요국 금융부문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동안 거론된 많은 규정과 규제가 조기에 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일에 대비한 자본 부족= 유럽 은행들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게 됐다. 독일 코메르츠방크만 해도 부실채권이 1360억유로(1800억달러)에 이른다.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은 앞으로 3~5년 동안 3조2000억유로 규모의 부실채권을 털어내야 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많은 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돕지 않는다면 자본을 다시 확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뮌헨 기술대학의 금융전문가인 크리스토프 카서러의 분석이다. 리먼이 파산보호를 신청했을 때 많은 대형은행의 자본준비금은 전체 자산의 2% 수준이었다. 그 결과 작은 손실이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후 대형은행들은 자본준비금을 더 쌓았지만 비율은 현재 3%에 그친다. 제네바대학의 금융전문가 하랄드 하우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금융당국은 논의할 때의 정치적인 언사와 달리 규정을 강화하는 데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슈피겔은 금융당국은 위험한 대출에는 더 자본금을 쌓도록 한다고 하는데, 이건 얼핏 합리적인 것 같지만 위험은 드러난 이후에야 규모가 나오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분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대형 은행이 위험가중자산 대비 기본자본비율을 국제기준인 바젤Ⅲ가 규정한 3%보다 높은 6%로 맞추도록 하기로 했다. 지난달 말 입법 예고된 이 법안은 2018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기본자본비율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지표다. 기본자본은 자본금과 자본준비금, 이익잉여금만 포함하고, 자기자본은 기본자본에 보완자본을 더해 산정한다. ◆은행 위험한 거래 차단벽은 아직= 은행의 파생상품 거래 투명성 제고, 고유계정과 고객계정의 분리 등도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위험한 은행 간 파생상품 거래를 감독 아래 놓인 거래소에서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제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장외 파생상품거래는 오히려 2009년 이후 20% 늘었다. 또 고객자산을 위험한 거래로부터 차단하는 별개 금융시스템을 고안했는데, 이 구상은 아직 설익은 단계다. 자본 확충에서 안전장치를 마련한 미국도 파생상품 규제에서는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7월 398개 법안으로 구성된 도드프랭크법을 마련했다. 로펌 데이비스 폴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40%인 158개만 시행됐다. 특히 도드프랭크법의 핵심 하위법인 볼커룰 제정은 두 차례나 연기됐다. 이 법은 은행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자기자본의 3%까지만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볼커룰 최종안이 마련된다고 해도 은행과 헤지펀드의 압력으로 왜곡돼, ‘헤징’의 정의가 투기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로 바뀔 수 있다. 최근 유럽의 금융전문지인 센트럴뱅킹저널은 이렇게 예상하고 "볼커룰을 온전한 내용으로 시행하지 못할 경우 파생상품으로 인해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버트 라이히 전 미국 노동부장관은 최근 리먼 5주년을 맞아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빚은 재앙으로 인해 아직도 미국인 수백만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구제금융을 받은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경제를 자신의 사설 카지노 삼아 전보다 더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라이히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기고에서 "우리는 2008년 9월 이후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는가?"라며 개탄했다. 백우진 cobalt100@asiae.co.kr 김근철 kckim100@asiae.co.kr 박병희 nu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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