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순환출자 금지 조항을 통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상법 개정안으로 인해 지주사 체제를 갖춘 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재벌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쏟아지는 법률들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정도입니다."국내 한 대기업 홍보실 임원의 얘기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부와 국회의 입법안에 대한 얘기다. 연일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대기업들에게 불리한 입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중소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며 규제완화를 통해 '손톱 밑 가시'를 제거,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각종 규제완화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기업들에게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순환출자규제와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출자 총액을 제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벗어나 지주사 위주의 지배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의도로 발의됐다. 하지만 두 제도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켜 신규 사업 진출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기업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해외 기업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명백한 역차별이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대기업 일부의 경영권을 외국계 기업에게 빼앗길수도 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들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라 지배구조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던 재계는 상법 개정안에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에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감사 위원을 일반 이사들과 분리 선출하고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현행 상법은 대주주 의결권에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이사를 뽑은 뒤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변경해 지주사 체제에서 막강해진 오너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될 경우 대주주 지분이 높은 지주사일수록 문제가 된다. 지분 50%를 넘게 들고 있어도 대주주는 3%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외국계 투자자들은 지분 총액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외국계 투자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사를 선임한 뒤 지주사를 통해 대기업 전 계열사에 지배력 행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순환출자를 하지 말라더니 이제는 지주사도 위협할 수 있는 법안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재계는 정부가 손톱 밑 가시 몇개를 뽑아주겠다고 나서더니 아예 재계 전체를 가시덤불에 밀어넣는 형국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법안으로 인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정도"라며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정부, 국회, 노동권 모두가 포퓰리즘 입법에 나서며 진흙탕이 돼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28일 10대그룹 총수와 청와대 오찬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다. 박 대통령은 10대그룹에게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거듭 당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라고 당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박 대통령이 재계가 왜 지금 상황을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 왜 재계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투자를 주저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명진규 기자 ae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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