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알랭 미끌리 스타일의 동그란 안경. 화이트 도트가 박힌 카키색 타이, 몸에 딱 달라붙는 수트와 뒷굽이 닳지 않은 브라운 컬러의 구두. 이건호 신임 KB국민은행장을 말해주는 첫 번째 코드는 패션이다. 보수적인 은행권 최고경영자(CEO) 사이에서 이 행장의 스타일은 단연 화젯거리다. 점잖은(?) 스타일을 선호하는 여느 행장들과는 패션에 대한 접근방식이 다르다.
패션 말고도 이 행장 뒤엔 갖가지 뒷얘기가 많다. 뒷말 무성했던 선임 과정은 본인의 인맥, 또 부친의 이력과 맞물려 갖가지 설을 낳았다. 금융권에선 금융위원회 정찬우 부위원장과의 친분,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 가까웠던 고(故) 차백인 박사와의 인연이 이 행장을 밀어올린 추동력이었다고 수군댔다. 얘깃거리 많은 이 행장이 '스토리 경영'을 경영 원칙으로 삼은 건 그래서 더 흥미롭다. 그는 첫 출근 후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객의 성공스토리를 만들고 사회와 나눔스토리를 써 나가고, 임직원과는 공감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임 행장이 취임식 대신 직원들과의 대화를 택한 건 국민은행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행장은 나아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직원들을 부채로 여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에겐 "신입 행원 규모를 줄이지도 않겠다"고 언급했다. 달변의 이 행장은 행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낙하산' '외인부대'라며 이 행장을 비토하던 행내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국민은행의 상반기 순익은 84% 급감했고, 지난해 말 기준 1인당 순익 규모는 업계 평균치를 크게 밑돈다. 이 행장은 구멍 난 장부를 메우면서도 비대한 조직을 구조조정없이 정상화할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마당에 복지 확대를 말하며 노조와 화해한 건 경영난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안배 없는 인사 원칙이 홍해처럼 갈라진 행원들을 더 흩어지게 만들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모든 숙제를 해결하기에 3년의 임기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 행장은 하지만 "CEO란 3년만 보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적어도 10년의 시야로 임기 중 그 초석을 놓겠다"고 했다. 이 행장이 스스로 정의한 '그런 CEO'가 될 수 있을지, 금융권 전체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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