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오늘은 1906년 천도교 교주 손병희에 의해 '만세보'가 창간된 날입니다. 손병희는 밀려오는 외세 속에서 국민교육, 문명개화운동의 하나로 신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입니다. 만세보의 창간사에는"신문이란 지식을 계발하는 하나의 교육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제간의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고, 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으며 정치를 지도할 수도 있을 만큼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만큼 신문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이죠.아울러 당시 동학의 일파였던 이용구가 '일진회'를 만들어 친일에 앞장서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도 신문이 필요 했습니다. 실제로 만세보는 사설을 통해 일진회의 활동을 통렬히 비난했습니다.만세보는 한문과 한글을 병기해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읽게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만세보의 주필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혈(血)의 누(淚)', '귀의 성' 등으로 잘 알려진 이인직이었습니다. 이인직은 7월 22일자부터 10월 10일자까지 신소설의 효시인 '혈의 누'를 만세보에 연재 하였습니다. 또 10월 14일부터는 '귀(鬼)의 성(聲)'을 연재하기도 했죠.하지만 만세보는 경영난으로 1년 남짓만에 지령 293호로 1907년 6월 29일 종간하고 맙니다. 그러자 이완용은 이인직을 시켜 이를 인수하게 한 뒤 '대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발행을 계속합니다. 문제는 대한신문은 철저히 이완용내각의 기관지 구실을 했다는 점입니다. 어느 시대든 언론이 바로 서야 그 나라가 바로 서는 법이죠. 만세보 창간일에 오늘의 언론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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