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훈 포스코A&C 대표
건축가로 유명해진 친구가 있다. 그는 유난히 동물을 좋아한다. 물고기부터 개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무조건 키우고 싶어 한다. 그 당시 친구 부인의 이야기론 퇴근 후 친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물고기와 기니피그 밥 주고 한동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동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는 친구의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 친구가 돈을 벌어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동네에 주택을 마련해서 놀러 가 보니 거의 동물 농장 수준이었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큰 개 두 마리, 수족관에 가득한 열대어, 커다란 연못엔 잉어와 거북이가 있었다. 이제 만족하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예외였다. 자기는 동물들을 사다만 놓았을 뿐 돌볼 시간이 없어 동물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 욕만 먹는단다. 얼마나 개를 키우고 싶어 했는지 동물도감을 사 놓고 갖고 싶은 개를 늘 들여다보던 친구가 드디어 단독주택을 마련하고 그 개를 갖게 됐는데 같이 산책 나갈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삶이라니…. 가벼운 예지만 이게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갖고 싶던 것을 소유하게 되면 또 다른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주변을 보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성형과 미용에 매달린다. 외모가 자산이기에 외모에 대한 투자는 자산을 늘리는 일과 동일하다는 그럴듯한 논리까지 동원된다. 외모와 행복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에 대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1995년 Diener와 Fujita는 여대생 1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화장이나 헤어스타일등 오염 변인을 제거하기 위해 민낯에 샤워캡을 씌우고 사진을 찍은 후 100명의 사진을 수백 명의 학생들 앞에 띄워 놓고 10점 만점으로 평가를 해 예쁜 순서로 순위를 가렸다. 이후 실험에 참가한 100명의 여학생에게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가를 같은 방법으로 물어 순위를 정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미모와 행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객관적으로 예쁜 학생 중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49%, 그렇지 않은 학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51%였다. TV를 보면 얼굴이 달라져서 나오는 연예인들이 많다. 자신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일반적 기준에 자신을 맞춰 간다. 그런데 그 일반적 기준이란 게 빠르게 변하니 계속 외모를 바꿔 갈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예쁜 여학생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것은 자신보다 더 예쁜 여학생들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예쁘지 않아도 주관적으로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학생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건축가로의 첫걸음은 창조력을 갖는 것이며 창조력은 남과 다른 사고를 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이 가진 독특한 생각을 깊게 파 들어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해 낼 때 이미 좋은 건물을 설계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춰진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올라가야 할 사다리가 너무 많고 그 앞에 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 사다리 끝에 도달해서 열매를 딴 사람은 그간의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쉬면서 그 열매의 맛을 즐겨 보기도 전에 배낭에 열매를 넣고는 또 다른 사다리를 오르려고 줄을 선다. 그렇게 개를 키우길 원했던 친구는 이제 말을 키우고 싶단다. 말을 키우기 위해선 제주도에 땅을 사야 한다면서 시간 날 때마다 제주도의 목장을 찾아 헤맨다. 친구가 동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행복해했던 순간은 말을 키울 농장을 찾아 헤매는 지금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금붕어와 햄스터에게 손수 먹이를 주고 그들의 조그만 몸짓에 동화되던 젊은 시절이란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필훈 포스코A&C 대표<ⓒ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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