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삼성전자가 지난 5일 미국에서 아이폰 수입 금지 결정을 받아냈다는 소식이 전해진데 대한 반응이다. '카피캣' 오명을 벗고 삼성 통신 표준특허의 중요성을 인정받은데다(명분) 애플 안방에서 아이폰 수입과 판매를 금지시켰기(실리) 때문이다. 그러나 사안을 한꺼풀 벗겨 보면 명분과 실리를 챙긴 쪽은 삼성보다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다. ITC는 지난해 예비판정에서 삼성이 애플 특허 4건을 침해했고 애플은 삼성 특허를 단 1건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한국, 유럽 등 미국 밖에서는 '동네 재판', '보호 무역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대통령 직속 기구라는 ITC로서는 체면 구긴 일이다. 이번 최종판정에서 ITC는 아이폰 수입 금지 결정을 내림으로써 안팎으로 적당히 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삼성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자국 기업에 편향된 판정을 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얻었다. 미국 수입 금지 대상에 신형 아이폰을 제외하고 2010년 출시한 아이폰4 이전의 구형 제품만 포함시킴으로써 애플에 실질적인 손실도 주지 않았다. 당초 1월14일로 예정된 최종판정을 다섯 차례나 연기하는 등 고심 끝에 둔 ITC의 묘수인 셈이다. 삼성이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TC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기 보다는 '세기의 소송'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미국이 공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애플의 세금 회피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경고 성격도 있을 수 있다. ITC는 오는 8월1일 삼성 스마트폰, 태블릿의 미국 수입 금지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 10월 예비판정을 확정해 삼성 제품의 수입 금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무승부다. ITC가 삼성 제품 미국 수입 및 판매 금지를 결정하는 순간 삼성이 맛본 승리의 기쁨도 빛이 바랠 수 있다. 이번 ITC의 결정을 삼성의 통신 표준특허를 오롯이 존중하고 자유 무역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대승적 결정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판단의 결과일 수 있다. 이번 아이폰 수입 금지 결정의 가장 큰 승자가 삼성이 아닌 ITC인 이유다.권해영 기자 rogueh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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