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오늘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이른바 '둘리틀 폭격대'로 하여금 도쿄, 오사카, 나고야, 고베 등에 대해 공습을 감행한 날입니다. 당시 책임자가 둘리틀 대령(당시에는 중령)이라서 붙여진 폭격대 이름이죠.당시 미국은 41년 12월 7일 진주만 피습에 이어 이듬해 2월 24일 일본 해군이 미국 본토인 캘리포니아까지 공격 해오자 대책을 세워야 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결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 본토 공습을 허락합니다.16대의 B-25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의 양은 비록 많지 않았고 일본측 피해도 300여명의 사상자와 350호의 가옥이 파손되는 경미(?-피해는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한 것이었지만 일본의 충격은 엄청났습니다.당시 각 전선에서 승리를 거듭하던 일본이었고, 천황이 거주하는 도쿄를 포함해 본토가 직접 공격 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일본은 1월 필리핀 마닐라를 점령한데 이어, 2월에는 싱가포르를 점령했으며, 3월에는 버마와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점령하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을 때죠.실제로 일본이 본토를 공격받은 것은 13세기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공격 이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본토 방어에 호언장담을 하던 터였으니 그들의 놀라움은 상상이 갑니다.미국측의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16명의 조종사 중 1명이 전사하고 2명이 행방불명됐으며, 8명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포로 중 3명은 일본에서 처형되었습니다.1944년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영화 '퍼플 하트'는 이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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