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연애의 온도'는 제목에서 기대되는 만큼 로맨틱한 영화가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사랑했던' 연인이 등장한다. 비밀 사내연애로 3년을 만난 영(김민희)과 동희(이민기)가 헤어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꼈는지, 어떤 오해로 헤어지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별 이후 이들이 벌이는 온갖 진상들이 구구절절하게 펼쳐질 뿐이다.'현실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홍보 문구답게 이민기가 맡은 '동희'도 여느 보통의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같이 쓰던 노트북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그녀의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여러가지 숫자를 짜맞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니 '해방감'이니 허세를 부리면서도, '영'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민기는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런 디테일이 살아있는 주인공들이 너무 좋았다. 여기서 내가 뭘 더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뭘 하지 않아야지'하고 생각했다. 과장해서 보여주는 게 인물과 영화에 해가 되는 부분이니까."라고 말했다.'연애의 온도'는 노덕 감독의 첫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현실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보편적 감정을 리얼하게 담고 싶었다"는 포부답게 멜로영화에 등장할법한 판타지를 모두 걷어냈다. 노덕 감독은 이민기에게 '동희'가 '비호감이거나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이민기는 은행원의 일상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따금씩 실수도 하고, 상처도 주는 보통의 남자를 연기했다.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감독과 배우들이 만나 그 나이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일견 성공한 듯하다.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도록 곳곳에 삽입한 인터뷰 장면은 신선하면서도 극의 사실성을 살리는 데 한 몫 한다. 은행 동료들의 추임새도 잔재미를 더한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공들의 복잡해진 심리는 '동희'와 '영'이 술집에 앉아 어색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던 그 몇 초간의 정적만으로도 모두 설명이 된다. 한없이 뜨거웠다가 이내 미열도 남지 않게 식어버린 이 '연애의 온도'를 두고 이민기는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정의한다.
"내가 '동희'였던 부분은 100%이자 0%이다.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한 거다. 그냥 감독님이랑 우리는 모두 '현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찍었다. 동희가 가졌던 느낌들은 비단 여자한테만 느꼈던 감정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들이었을 거라고 본다. 다만 나는 연애를 했을 때 '동희'만큼 뜨거워보지를 못했다. 그런 부분들이 부러웠고,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동희'처럼 감정을 모두 써보고 싶다."'퀵', '해운대' 등 액션신이 많았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영화는 몸을 쓰는 대신 감정의 높낮이가 많았다. "의외로 이번 작품에서 사소하게 부상이 많았다. 이전 영화들은 워낙 위험한 장면이 많아서 충분히 연습을 하고 들어가지만, '연애의 온도'는 옷을 붙잡고, 꼬집고, 할퀴고 그러면서 싸우는 것들이다. 나중에 보니까 하도 많이 꼬집혀서 멍도 들었더라."이민기는 모델로 시작해 올해로 벌써 데뷔 10년 차가 됐다. 특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는 2005년 MBC 베스트극장의 '태릉선수촌'에서의 모습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당시 포기를 모르며 한 여자를 위해 돌진하던 '홍민기'가 이제는 결혼하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생각이 많은 표정을 짓는 '동희'가 됐다. "'홍민기'는 그 나이 대에 맞는 아이였고, '동희'는 지금 내 나이에 맞는 사람"이라고 이민기는 말한다. "원래 연기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중요한 역할을 주려고 하면 오히려 내가 '작은 역할'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데 어떻게 하냐'는 마음이었던 거다. 연기를 잘해보고 싶으면서도 왜 그렇게 겁을 냈는지...그러다 이것저것 많이 부딪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연애의 온도'의 이 연인에게 놀이동산은 중요한 장소다. 처음으로 헤어진 곳이며, 다시 만난 이들이 또 기로에 놓여지게 되는 곳이다. "놀이동산에서 비 맞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데 며칠 전부터 감기에 걸려서 몸이 좋지 않았다. 빨리 나아야 하니까 하루에 비타민을 한 몇 십 알은 먹은 것 같다. 설경구 선배가 어느 인터뷰에서 '배우는 슛이 진통제'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진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든 촬영이 되더라."한국영화 전성기에 개봉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크단다.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하는 영화다.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부분이 많은 영환데, 그런 면들을 관객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조민서 기자 summer@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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