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제보로 행방찾은 '연복사탑중창비' 서울시문화재 지정예고

용산철도회관(용산구 한강로 4가)에 있는 연복사탑중창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그동안 학계에서 소재불명으로 알려진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가 시민제보로 서울 용산에서 행방을 찾아 서울시문화재로 지정될 전망이다. 연복사탑중창비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다시 세워진 연복사 오층불탑(목탑)의 건립내력을 담은 비석이다. 이 비석은 연복사 오층탑 중창의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는 동시에 중국식 석비 양식 수용으로 새로운 조형의 조선시대 석비예술을 예고하는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자료로 문화재적 가치를 띠고 있다. 이번에 이 비석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월 24일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의 인터넷 까페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에 가입한 회원 김석중씨가 "우연히 길을 가다 연복사탑중창비를 발견했다"는 글을 올린 게 계기가 됐다. 이 소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흩어진 우리 석조 문화재의 원위치 및 소재지 찾기에 힘을 기울이며 관련 저서를 발간해왔고, 연복사탑중창비의 행방을 찾는 일도 주요한 관심사여서 연복사탑중창비의 소재지와 관련한 몇 건의 자료를 이 까페에 게재한 바 있다.1494년에 세워진 연복사탑중창비의 비신(비문을 새긴 돌) 부분은 망실되었으나 귀부(거북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와 이수(이무기의 머리부분을 조각한 것) 부분만은 온전하게 옛 절터에 남겨졌었다. 이어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이 본격화되던 100여 년 전 무렵에 서울 용산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복사(演福寺)는 고려시대에 개경에 있던 대찰로서 도성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찰의 규모는 천여 칸이 넘었으며, 사찰 안에 세 개의 연못과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해 다시 세워졌던 개성의 연복사탑은 1563년(명종 18년)에 소실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차천로(車天輅, 1556~1615년)의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저술한 '해동역사(海東繹史)'의 기록에 따르면 연복사탑의 중창내력을 담은 연복사탑중창비는 조선 후기까지도 원형대로 잘 남아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이후 1910년 9월께 이 비석의 존재가 다시 확인됐다. 그 당시 일본 동경제대 건축과의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1867~1935년) 교수 일행이 고적조사에 막 착수하던 차에, 그 무렵 서울 용산으로 막 옮겨진 연복사탑중창비를 포착해 조사목록에 이 비석의 존재가 처음 채록되기도 했다. 당시 촬영된 사진 속 연복사탑중창비는 비신없이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경기도 개성의 남대문 밖 남산동(南山洞) 및 한천동(寒泉洞)에 있던 연복사는 경의선 철로가 지나는 구역과 맞물려 있고 개성역(開城驛)과도 상당히 인접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연복사탑중창비 또한 경의선 부설과 관련, 오늘날 용산구 한강로 3가 65번지 일대에 있던 용산 철도구락부로 이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철도구락부(鐵道俱樂部)는 현재 용산공업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옛 철도병원(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쪽에 걸쳐 있는 구역(한강로 3가 65번지 일대)에 자리했다. 해방 이후 1952년에 용산철도구락부가 있던 곳에는 항공대학이 들어서게 됐다. 이 학교는 1961년 무렵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40번지(구 교통부 시설국 청사)로 이전되었는데, 연복사탑중창비도 다시 옮겨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산역 민자역사 신축공사 과정에서 현 위치인 철도회관(용산구 한강로 4가 40-1010) 화단으로 옮겨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연복사탑중창비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새로이 수용되는 중국 명(明)대의 석비 조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귀부의 표현 자체가 매우 상징적이고 이수 부분도 중국 전통을 따라 반원형의 비신 상부에 오각형의 제액을 내고 그 주위를 여러 마리의 용이 휘감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부터 코레일과 보존방안을 협의하는 한편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조사와 사전심의를 통해 문화재 지정가치를 확인하고 이번에 문화재 지정계획을 21일부터 30일 동안 예고했다. 이 비석은 다음달 문화재 위원회의 2차 심의를 마친 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최종 고시될 예정이다.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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