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5300만명 시대, 일평균 78.5통 상담…고객센터가 국민해결사요즘 이통사 상담원은 '연·애(연령대불문애환상담) 박사''귀신'과 상담한 황당한 이야기도"오전에 통화한 김삼순 고객님 계세요?"..."삼순이는 벌써 죽었는디.."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상담원님, 저는 커플 요금제 해지하지 않겠습니다. 그녀한테 꼭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자 고객의 애원에 KT 고객센터 A 상담원은 할 말을 잃었다. 남자 고객과 통화하기 전 A 상담원은 여자 고객으로부터 커플 요금제를 해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둘은 커플 요금제를 썼던 연인이었고, 헤어지자마자 여자 고객이 먼저 해지를 요청한 것이다. 커플 요금제를 해지하려면 남자 고객의 동의도 필요해 전화를 걸었던 것인데 뜻밖의 상황에 A 상담원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동통신 가입자 5300만명의 대한민국에서 이통사 고객센터 상담원은 사실상 국민 상담원이다. 이통 3사 고객센터 상담원은 8400명, 고객센터에 하루 평균 걸려오는 전화는 66만건. 상담원 1인당 78.5통의 전화를 받는다. 남녀노소 연령대를 불문하고 전 국민을 상대하다보니 상담원들을 웃고 울리는 사연도 다채롭다.
◆ "아버님, 백두산 동영상 제가 대신 보내드리겠습니다" SK텔레콤 고객센터 B 상담원은 올초 중년 남성 고객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내가 백두산 여행을 와서 백두산 천지를 담은 동영상을 촬영했는데 우리 딸들한테 전송이 안되요. 발신만 하면 실패했다고 화면에 뜨는데 이거 왜 이런 거에요? 빨리 확인 좀 해봐요." B씨는 오류 증상을 파악하고 휴대폰 설정을 바꾸는 것까지 안내했다. 그러나 여러번 시도에도 계속 실패했다. 그때 B 상담원의 귓속을 파고드는 실망스러운 목소리. "꼭 딸아이한테 보여주고 싶었는데…" 순간 B 상담원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언뜻 스쳤다. 상담원이 고객의 동영상을 받아 딸에게 대신 보내주는 방법이었다. "고객님, 저에게 동영상을 보내주시면 제가 따님들에게 보내드리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준다면 너무 고맙죠. 백두산에서 집에 가는 길인데 내가 도착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우리 딸들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B 상담원은 경이로운 백두산 천지를 담은 동영상을 보고 나니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객 대신 "천지의 좋은 광경을 너희들과 함께 보고싶구나, 기운을 받아 우리가족 항상 건강하자"는 메시지를 담아 전송 버튼을 눌렀다.
◆ "저…귀신하고 통화한 거 같아요" SK텔레콤 통화품질상담실은 업무 특성상 남자 상담원들이 많다. 균형적인 성비 덕분에 분위기도 좋다. 그러던 어느날 덩치 큰 C 상담원이 사색이 돼 팀장에게 달려왔다. "팀장님, 큰일났어요. 저 귀신하고 통화한 거 같아요." C 상담원은 그날 오전 한 주부고객에게 통화품질 상담을 해줬다. 그러나 고객이 외출을 해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늦은 오후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퇴근 무렵 상담원이 전화를 해보니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에 김삼순 고객과 통화하기로 했는데 지금 집에 계시나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머님, 김삼순 고객 집에 계신지요" 재차 물었더니 한참 뒤 "우리 삼순이 집에 없느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직 안돌아오셨나보네요. 제가 7경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아니…근데 이 양반아, 우리 삼순이는 죽었는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C 상담원은 녹취자료를 다시 확인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조회를 해도 녹취 자료가 없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정말 귀신이었을까. 혹시나 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김삼순씨와 통화가 이뤄졌고 미스터리는 풀렸다. 고객 왈 "아, 미안해요. 사실은 저희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신건데. 저희 어머니가 치매가 있으셔서…놀라셨죠?" 귀신소동이 끝났고, 사라진 녹취록의 행방을 찾던 중 C 상담원은 팀장으로부터 따끔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상담 중에 스크린 말고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엉뚱한 곳을 클릭해 녹취 검색을 할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 "연애 문제? 저한테 상담하세요" 고객의 문제를 상담해주는 상담원보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상품을 판매하는 상담원은 고객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다. 바쁜 업무 중에 관심도 없는 상품가입 안내를 들어주는 인내심 많은 고객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통사의 D 상담원은 이런 상황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낮고 무기력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D 상담원은 열심히 상품을 설명했다. 고객은 끊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다할 대꾸도 없었다. 관심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잠시만요"라고 말을 건다. "제가 가입을 하게 되면 꼭 연락을 드릴게요. 근데 정말 진심으로 한 가지만 여쭤보는 건데 제가 여자친구랑 다퉈서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정말 여자들의 마음을 아는게 너무 어려워서…" 고객이 갑자기 연애상담을 요청해왔다. 업무외 일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레 상품이 아닌 연애상담으로 넘어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남자 고객은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D 상담원을 찾았다. 통화가 이뤄지자 일가친척을 동원해 상품을 구매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이건 큰아버지, 이건 작은 어머니, 이건 삼촌 번호에요. 이거 신청하면 상담원님께 도움이 되는 건가요?" 상담원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심나영 기자 sn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2부 심나영 기자 sny@ⓒ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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