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산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청색을 띤 한려수도의 봄 바다와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대·소병대도와 매물도, 장사도, 비진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하일경이란 말이 아깝지않게 망산은 다도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사진 위), 선홍빛 봄을 선사하는 지심도 동백(아래 오른쪽),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옛구조라분교의 춘당매(아래 왼쪽)
[아시아경제 . 여행전문기자 조용준 기자]제주도에서 뿜어낸 봄향기가 바다 건너 육지에 당도했습니다. 가장 먼저 남녘땅 거제도에서 봄을 받았습니다. 옛 구조라분교의 춘당매 네 그루가 활짝 꽃을 피워 봄 내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열흘 전쯤에 첫 꽃망울을 터트렸으니 지금쯤 만개했을 듯합니다. 예년보다 일주일여 늦었지만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매화답게 순백의 꽃잎은 화사했고, 향기는 그윽했습니다. 바다 건너 불어오는 봄향기를 맡기에 그만인 망산은 이미 봄이 당도한 지 오래입니다.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로 청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과 바다는 온통 싱그러운 봄을 품었습니다. 핏빛으로 피어나는 지심도의 동백은 또 어떤가요. 선착장에 내려 섬으로 드는 동백터널은 말 그대로 붉게 꽃을 피운 동백향으로 봄이 충만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명승 중의 명승으로 꼽히는 해금강의 빼어난 자태, 봄바다의 파도에 자갈들이 자그락거리는 학동과 여차의 몽돌해안…. 이렇듯 거제의 봄은 이곳저곳에서 쉴 새 없이 축포를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망산에 올라 다도해의 봄기운을 부르다
거제도 지도를 보면 가장 남쪽으로 혹처럼 붙은 곳이 보인다. 그곳에 망산(望山ㆍ375m)이 있다. 망산의 '바랄 망(望)'이란 이름은 고려말 잦은 왜구의 침입에 주민들이 이 산 정상에 올라 망을 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름의 연유가 이러하니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한려수도의 전망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산행은 저구마을 삼거리에서 출발해 내봉산을 넘어 망산 정상에 올랐다가 명사쪽으로 내려서는 6.7㎞(3시간30분) 코스를 가장 많이 택한다. 하지만 본격 등산이 아니라 여행의 일정이라면 망산을 오르는 최적의 코스는 여차마을에 있다. 마을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 망산 정상에 들렀다가 홍포무지개마을쪽으로 내려온다. 3.8㎞ 남짓으로 2시간이면 넉넉하다. 산행 후에는 홍포에서 여차까지 해안절경이 펼쳐지는 비포장 구간을 걸어서 되돌아온다.여행(?)에 나섰다. 여차 들머리에서 내봉산 능선까지 500m다. 짧지만 가파른 길이라 허벅지가 팍팍해질 때쯤 능선에 섰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걸으며 변화무쌍하게 펼쳐진 해안 풍경을 만끽하게 된다. 산 아래로 방금 올라선 여차 몽돌해안이 아련하게 내려다보인다. 해안에 부딪히는 흰 파도가 어울린 풍치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삿갓모양의 천장산(275.8m) 뒤로 보이는 해금강은 햇빛을 받아 온통 은빛으로 넘실거린다. 큰 소나무 앞에서는 저절로 발길이 멈춰진다. 그늘이 좋고 그 뒤로 점점이 솟아난 섬들의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봄볕에 녹아 폭신해진 산길을 따라가며 새소리를 벗 삼아 동백과 후박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망산은 비석에 새겨진 '천하일경'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최상급 조망을 선사한다. 산정에 서면 잘 올라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줄곧 해안 풍경을 굽어보며 걸어온 터라 눈이 무뎌질 법도 하건만 정상에 서면 숨이 막힐 정도의 경관에 말을 잊게 된다. 깎아지른 암봉 아래로 대ㆍ소병대도와 매물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수석처럼 떠 있다. 옥색 비단 같은 바다 위에 주름을 그리며 미끄러지는 배들도 풍경에 가세한다.
정상 아래는 홍포무지개마을이다. 바다를 향해 길게 튀어나온 167m 봉 왼쪽부터 길게 반원을 그리며 마을까지 이어진 해안은 아름답다. 그 뒤로 장사도, 비진도, 욕지도 등 한려수도의 무수한 섬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시선을 북쪽으로 두면 에메랄드빛 저구리만 뒤로 가라산, 노자산 등이 첩첩이 산줄기를 이룬다. 정상에서 오던 길을 되짚어 400m 내려오다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이 홍포방향이다. 이곳에서 600m만 내려가면 된다.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숲을 앞두고 길이 가파르게 내리막이다. 꽃을 피웠다 뚝뚝 떨어진 동백을 감상하며 내려서면 어느새 마을에 닿는다. ◇육지에서 가장 먼저 피는 춘당매에 봄향기가 가득
올해 봄꽃의 첫 향기는 일운면 구조라리 구조라분교 마당의 춘당매가 피워냈다. 하지만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는 매화도 혹독한 올겨울 추위에 예년보다 열흘이나 늦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구조라분교를 찾았던 열흘 전 가지마다 매화가 몇 송이씩 꽃망울을 내밀었으니, 지금쯤은 분교 담 안의 매화나무가 터트린 꽃 내음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게다.◇지심도 동백터널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선홍빛 봄
동백꽃 향연이 한창이다. 처연할 만큼 붉은 꽃송이로 봄날의 그리움으로 겹겹이 쌓여 핀 작은 꽃들이 화려한 색깔과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심도는 장승포항에서 배로 15분 걸린다. 선착장에 내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동백터널이 나온다. 하늘을 찌를 듯 좌우로 늘어선 동백나무들이 칡넝쿨처럼 엉켜 앞다퉈 꽃을 피우고 있다. 상록수에 둘러싸인 아담한 농가와 쪽빛 바다 등 정감 어린 오솔길을 걷노라면 마치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이다. ◇자그락자그락 학동 몽돌해안으로 밀려오는 봄소리
흑진주빛의 몽돌이 약 1.2㎞에 걸쳐 펼쳐져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몽돌해변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몽돌밭을 쓰다듬는 파도소리는 들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봄빛 좋은 날 가족이나 연인과 몽돌밭에 앉아 그 소리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봄기운은 충만하다. 여차, 농소 몽돌해변도 학동만큼 유명하다. ◇거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길…여차에서 홍포까지
거제 남쪽 끝으로 가면 남해안 최고의 풍경을 만난다. 여차에서 산길을 따라 홍포마을을 잇는 비포장 해안도로다. 바다에 바싹 붙어 이어진 산길을 달리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는 섬들이 시야와 원근에 따라 겹치고 흩어지며 시시각각으로 빼어난 풍광을 빚어낸다. 이 길을 한번이라도 달려본 사람이라면 내내 '아 좋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느 계절에도 좋지만, 봄날의 정취가 최고다.거제=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여행메모△가는길=서울에서 가자면 경부고속도로~대전ㆍ통영간 고속도로~통영IC~(신)거제대교 방향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부산방향에서는 을숙도~가덕도~거가대교를 거치면 1시간이면 거제도에 들어간다.
△먹거리=거제도의 봄은 눈과 코 뿐 아니라 입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다. 대표적인 맛집은 신현읍 고현리의 '백만석'(055-637-6660)이 있다. 다져서 네모꼴로 냉동한 멍게와 김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비벼먹는 멍게비빔밥(사진)으로 유명하다. 이즈음 양식굴이 한창이니 서정리 '거제도 굴구이'(055-632-9272)집이나 내간리 원조 거제 굴구이집(055-632-4200)등은 찾아볼만하다. 거제대교 아래 성포에는 횟집들이 몰려 있는데 봄철의 진미인 도다리쑥국을 잘 끓여낸다. 도다리 철이 아직 일러 이달 말쯤부터 맛볼 수 있다. 또 전국 최대 대구 집산지인 외포항에는 대구요리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성포항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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