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설없다…서럽다

보너스 절반 깎고 연봉인상률 줄이고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임직원 8명 규모의 중소 제조기업 A사는 올해 직원들의 설 보너스를 지난 해 대비 30% 줄이기로 했다. 매출이 뚝 떨어져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은행에서 대출한 돈 1억원도 대부분 2차 벤더들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했다. 돈이 없어서 휴가를 준다는 것도 옛말이다. 설 휴가도 법정휴무기간인 3일만 쉬기로 했다. A사 사장은 "휴가를 늘린다고 월급을 덜 주는 것도 아니라 일이나 더 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IT벤처 B사는 절반 정도 진행된 수출 프로젝트가 새해 들어 막히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자금줄이 막혀 제품 수정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B사 사장은 백방으로 자금을 구하러 다니고 있지만 다들 힘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설이 다가왔는데 직원들 보너스를 주지 못해 떡값으로 몇 만원씩 쥐어주는 데 그쳤다.  설을 앞두고 중소기업들 사이에 '자금 비상'이 걸렸다. 보너스, 직원 선물 등으로 돈 쓸 데는 많아졌는데 자금줄은 바싹 말랐기 때문이다. 31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86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자금 수요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0.2%는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경기침체로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위축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소기업이 52.8%, 중기업이 36.8%로 작은 기업 쪽의 비율이 더 높았다.  비교적 규모가 큰 중소기업들도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300명 규모의 중소기업 사장 C씨는 "자금사정에 특별한 애로는 없지만, 연초 연봉협상에서 인상률을 기존 4.5%에서 4%로 낮췄다"며 "설 선물도 5만원 이하로 간소하게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의 '비올 때 우산 뺏는' 대출행태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중 77.5%는 "실제 현장에서 은행들의 자금지원 확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라도 나주에 위치한 소규모 제조업체 사장 D씨는 "자금이 말라 은행을 찾아갔지만 보증서도 담보도 없다며 거절당하기 일쑤"라며 "직원들 보너스도 200%에서 100%로 줄였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책자금을 좀 더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주무부처들이 예산집행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설 자금 조사만 하고 있다"며 "소기업들은 부채비율이 높게 마련인데, 정책자금을 지원할 때 부채비율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보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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