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김광규의 '대웅전 뒤쪽'

크낙산 뒷절 돌계단에/목탁 소리 염불 소리/부처님께 절하는 대신/샘물 한 모금 마시고/싸리비 자국 무늬진/옛 마당을 거닌다/대웅전 뒤쪽 빛바랜/흰 소가 풀뜯는 처마 밑/ 깨어진 기왓장 나뒹굴고/석가탄신일 경축탑 버려져 있어/뒷골목 헛간처럼 응달진 곳/누군가 거기 있는 것 같아/걸음 멈추면 실고사리/잎을 흔들며 사라지는 기척/한 번도 본 적 없는 뒷모습이/ 마음을 언뜻 스쳐가고■ 절에 오르면 습관처럼 대웅전을 한번 기웃거리게 마련이지만, 괜히 건물을 돌아 뒤쪽을 살피는 일이 있다. 대웅(大雄)의 비밀이라도 염탐하려는 듯 살며시 뒷벽을 눈으로 훑노라면 수행의 길을 그림으로 풀어놓은 심우도(尋牛圖)가 만화의 창처럼 그려져있고 흰 소가 그 속에서 풀을 뜯고 있다. 대개 영화 스크린의 뒤쪽을 보는 것처럼, 허망하고 별 볼 일 없이 시간이 눅눅하게 흘러가고 있는 현장일 뿐이다. 그런데 김광규는 대웅전으로 통행하는 투명인간 부처를 발견한 모양이다. 걸음을 쓰윽 멈추니 고사리 잎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방금 절간에서 빠져나와 사라지는 슈퍼맨의 뒷모습을 파파라치처럼 몰카로 찍었다. 봤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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