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4년 이맘때쯤 ‘EPIC2014’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전용 비영리 교육기관인 포인터(POYNTER) 연구소 출신의 저널리스트 3명이 만든 10분이 채 못 되는 영상물이었다. 내용은 당시 기준으로 10년 뒤인 2014년까지의 미디어 변화를 예측해 가상으로 꾸민 것들이다. 그들의 예측이 맞을지는 이제 2년 남았으니 지켜보면 알 일이다. 잠시 내용을 보면 핵심은 이렇다. 2008년 구글과 아마존이 합병해 ‘구글존’이 탄생한다. 2010년 구글존은 구글의 검색기술에다 소비성향을 분석해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는 아마존의 기술을 합쳐 이용자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내놓는다. 특수 알고리즘을 이용해 컴퓨터가 모든 정보원으로부터 뉴스뿐만 아니라 데이터까지를 추출한 뒤 조합해서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동 뉴스다. 이용자 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뉴스와 정보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제공해 준다는 것. 그러자 ‘제4의 권력’의 맏형 격인 뉴욕타임즈는 구글존을 저작권 위반 혐의로 연방대법원에 제소한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구글존의 손을 들어준다. 여기까지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니 제작자의 예상은 틀렸다. 계속 보자. 마침내 2014년 3월 9일. 구글존은 ‘EPIC(Evolving Personalized Information Construct)’을 공개한다. 우리말로는 ‘진화형 맞춤정보 구축망’ 정도로 번역된다. EPIC은 연령, 성별, 거주지역, 소비패턴, 취미, 인간관계, 독서취향 등 수많은 개인정보를 일일이 해석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정보와 뉴스를 인터넷에서 자동으로 수집해 배달해주는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각종 데이터는 물론 사진과 동영상도 포함된다. EPIC은 정보과잉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뉴스 서비스 일지도 모른다. 영상물 속에서 설명한 것처럼 뉴스가 갑자기 우리와 관련성이 깊어지게 된다. 결국 뉴욕타임즈는 화가나서 인터넷에서 철수를 선언한 뒤 엘리트와 노인들을 위한 마이너 신문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제작자들은 EPIC을 환상적인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럴 듯 하기는 하지만 편협하고 천박하며 선정적인 잡다한 소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쉴새 없이 쏟아진다. 전화로, 이메일로, 메신저로, 애플리케이션으로, 스마트폰으로, PC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질 결를도 없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정보를 놓칠까 늘 불안하다. 정보의 공격앞에 우리는 피로하다 못해 현기증을 느낀다. 마침내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마는가.홍수가 나면 물은 넘쳐나는데 정작 마실 물이 부족해 지는 법이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내게 꼭 필요한 정보의 부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글존의 EPIC에 기대를 걸어야 할까? EPIC이 답이 아님을 제작자들이 이미 지적했다.결국 문제는 정보 소비의 추체성이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조롱속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니듯 말이다.나아가 중요한 것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알겠다는 의지다. 그 의지가없으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정보가 지식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꼭 지혜를 준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과도한 지식은 지혜에 걸림돌일 수가 있음을 옛 성현의 가르침에서 배운다. 지식을 지혜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색이다. 부처님이 어디 책을 많이 읽어 깨달음을 얻었던가? 삶의 힘이 되는 통찰력은 깊은 사색 끝에 나온다. 사색은 여유와 시간이 필요하다. 사색이 있어야 진실이 보인다. 진실은 사실의 숲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 넘치는 것은 사실(때로는 거짓도 많다)들이지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디를 가도 넘쳐나는 것이 정보이지만 어디를 가도 사색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EPIC은 오지 않는다. 아니 오지 않아야 한다.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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