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나이(여인네) 가는 길을 사나이 에돌듯이/사나이 가는 길을 계집이 치돌듯이/제 사내 제 계집 아니거든 이름 묻지 말구려■ 남녀간에 사단이 나지 않기 위해선 아예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란 얘기다. 조선의 스캔들 단속은 성(性)이 지닌 본질적인 인화성(引火性)을 간파하고 있는데서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얼굴도 보지 말고, 이름도 묻지 말아야, 상열(相悅)의 광란상태로 가지 않는다는 저 정철규정집에 의거하자면, 요즘의 거리들은 성을 불지르는데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각종 술집이나 TV나 영화, 게임 속은 벌써 스스로 슬쩍 미친 채 도발을 유인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리저리 얽혀들지 않고 무탈하게 지내는 수많은 이들은 얼마나 대단한 '둔감력'을 지닌 분들인가. 그런데 말이다. 정철 또한 천하의 풍류남아였고, 구석구석 러브스토리를 남긴 사내이다. 저렇게 훈민가로 일장훈시는 했지만, 조선의 뒷골목에선 지금만큼이나 사련이 들끓고 뒤숭숭한 그리움에 미친 남녀들이 비오는 창에 붙어앉아 밤을 꼴딱 새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 저 시조를 읽으면서, 황당해 하지 말고 저 맥락 아래에 숨은 그 세상의 들썩이는 공기를 음미하는 것도 흥미롭지 않은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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