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흔히 ‘포스’라 불리는 이 에너지는 배우에게 참 중요하다. 배우는 분량이 적더라도 수많은 배우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때 자신만의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조진웅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타고난 풍채 때문만은 아니다. KBS <솔약국집 아들들>, <추노>, SBS <뿌리깊은 나무>부터 영화 <퍼펙트 게임>, <고지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까지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조진웅은 자신의 눈빛과 말에 절절한 진심을 담았다. 이 배우가 하면 특히 더 간절해 보이는 느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르와 캐릭터는 천차만별 달라졌지만, 조진웅이 전달하는 그 기운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는 단순한 다작이 아닌, 조진웅만의 존재감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돼야 맞을 것이다.그런 그에게도 영화 <용의자X>는 유독 특별하다.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넘어 이 영화가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심정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번 영화에서 조진웅은 주인공 석고(류승범)의 동창이자 화선(이요원)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확신하고 수사를 멈추지 않는 형사 민범 역을 맡았다. “같은 원작으로 만든 일본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조진웅으로선 석고의 사랑을 도저히 이해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내 스스로가 설득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현장에 뛰어들었어요. 형사는 아니지만 ‘진짜 민범인 것처럼, 이 사람이 여행하는 걸 쫓아가 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처음 화선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계산해서 연기를 한다기보다 정말 민범의 입장으로 화선을 의심하면서 다가갔어요.” 인터뷰 도중 그 장면을 똑같이 재연하는 조진웅은 진지했다. “배우로서 내가 설득되는 게 중요했어요. 납득은 안 가지만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으니까 그것만 이해하고 가자? 그렇게 날로 먹고 싶지 않았거든요.”“아직도 석고의 사랑을 이해하긴 힘들 것 같지만” <용의자X>를 촬영하며 느꼈던 먹먹함은 조진웅에게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용의자X>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굵은 선을 그린다. “사랑이나 예술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고 저 스스로에게도 석고의 헌신적인 사랑이 가능한지 물어보게 된 경험이었어요.” 배우로서 현장에서 느낀 동료들과의 호흡 또한 그에게 소중한 재산이 됐다. “현장에선 내가 석고의 사랑을 다 이해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내 스스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작했고 그만큼 동료들을 믿어서 그런가 봐요. 사실 현장에 맡기고 연기하는 건 연극할 때 많이 해봤는데 퍼즐을 맞춰 놓고 시작하는 영화에서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재밌었어요.” 아직도 영화 속에 있는 듯한 그는 촬영 순간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매 촬영마다 현장에 모든 것을 쏟아 붓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하고 성실히 그 순간을 되새기는 것. 그것이 바로 조진웅의 눈빛에서 진심이 읽히는 이유인 듯하다. 다음은 그의 연기처럼, 조진웅이 인상적인 순간과 함께 빼곡히 새겨 놓은 노래들이다.<hr/>
1. IZZY의 < Ascolta >“평소에 음악을 정말 많이 들어요.” 좋은 곡이 너무 많아 고르기 힘들었다는 조진웅이 첫 번째로 추천한 곡은 IZZY의 ‘Song Of Our Homeland’다. 성악가이자 팝페라 가수 IZZY의 아름다운 고음이 귀를 사로잡는 이 곡은 ‘불타는 하늘 아래 느릿한 바람이 우리를 시원하게 하네. 구름이 산을 덮고 은빛 바다 위엔 꿈이 있네. 포도원은 달콤한 와인을 빚고 자유의 노래를 따라 날아가’라는 가사처럼 고향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곡이다. 조진웅은 “추천 곡 모두 공연 때 썼던 곡인데 이 곡이 유일하게 무용할 때 테마곡이었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부산에 ‘젊은 춤꾼 한마당’이라고 무용가들의 등용문 같은 축제가 있었는데 다른 연극배우들과 나갔거든요. 그때 제 파트는 발레였는데 이 곡이 메인 테마곡이었어요.”
2. Ben E. King의 < Greastest Hits >조진웅이 두 번째로 추천한 곡은 ‘Stand By Me’다. 이 곡은 리듬 앤 블루스 가수 Ben E. King의 대표곡으로 사랑스러운 멜로디만큼이나 ‘어두운 밤이 와 세상이 깜깜해진다 해도 그대만 내 곁에 있다면 두렵지 않아’ 등의 가사도 로맨틱하다. 또한, 도입부의 멜로디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올드 팝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조진웅은 CBS FM 93.9 채널을 즐겨 듣는다며 곡에 얽힌 추억을 전했다. “이 곡의 가사나 선율이 주는 의미도 있지만, 저에겐 개인적으로 특별한 곡이에요. 연극 <바리데기> 때 제 섹션의 메인 테마곡이었거든요. 당시 사극 작품에 이 곡을 썼다는 것도 특별했어요.”
3. Radiohead의 <1집 Pablo Honey>누구나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그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 있을 때 온다면, 좌절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Radiohead의 대표곡 ‘Creep’은 그 감성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곡이다. 조진웅에게도 이 노래는 어느 영화 못지않게 감성적으로 기억된다. “이 곡도 <바리데기> 때 썼던 곡이긴 한데 더 특별한 추억이 있어요. 어느 날 제가 연극제 가려고 트럭을 몰고 있었거든요. 근데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시동도 꺼지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계속 시동을 걸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동이 켜질 때 이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빗속에서 이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4. Irwin Kostal의 <사운드 오브 뮤직 (Sound Of Music) OST>“<사운드 오브 뮤직>을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예전에 대학 다닐 땐 극단에 아무도 없으면 혼자 이 영화를 틀어놔요. 대사를 거의 외울 정도여서 혼자 대화하면서 따라 하고 소주 한 잔 마신 기억이 나요.” 조진웅이 네 번째로 추천한 음악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OST 중 대표적인 곡 ‘My Favorite Things’다. 이 곡은 새 가정교사로 온 마리아(줄리 앤드류스)를 낯설어하던 트랩 대령(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아이들이 천둥 번개가 치자 마리아 방으로 달려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쓰였다. 줄리 앤드류스의 목소리만큼이나 ‘장미 꽃잎의 빗방울과 아기 고양이의 수염. 크림색 조랑말과 사과 과자. 초인종과 썰매 방울’ 등 상큼하고 사랑스러운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5. Pat Metheny의 < Road To You: Live In Europe >조진웅이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Pat Metheny의 ‘Last Train Home’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곡은 어디론가 향하는 기차 소리만으로도 듣는 사람에게 설렘을 준다. 그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해 둔 이 곡을 직접 들려주며 추천 이유를 말했다. “약간 BGM 같은 음악이에요. 우울할 때 차 안에서 이 음악을 들으면 기차 소리처럼 심장이 막 두근두근 뛰어요. ‘그래, 앞으로 열심히 해보자!’ 이런 생각도 들게 해주고요. 그리고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도 있어요. 이 곡에서는 ‘Home’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해석될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 노래를 들으면 위로도 받고 편안해져요.”<hr/>
연기에 빠져든 지 어느덧 십여 년. 역할의 비중은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에게도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첫째는 그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 두 번째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 작품, 마지막은 충돌을 일으킬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내 덧붙인다. “에이, 근데 그런 거 다 소용없어요. 막상 현장 가면 들어가기 전 제가 생각한 거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냥 어떤 장르든 잘해냈으면 좋겠어요. 제 꿈이 다음 작품을 잘하는 거거든요.” 소박한 듯 들리지만, 이 점이야말로 조진웅이 촬영장 바깥에서도 연기를 놓지 않는 이유다. “캐릭터가 가슴에 들어오기까지 어마어마하게 외롭고 힘들지만” 항상 전력을 다하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그렇게 더 좋은 연기를 준비하는 배우. 그래서 조진웅은 누구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일 것이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한여울 기자 sixte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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