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1년여 전이다. 이승엽은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 땅을 밟았다. 9년만의 국내 복귀. 그는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두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성적에 대한 부담과 자신을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이다. 이승엽은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었다. 주전 1루수를 꿰찼지만 성적은 침체에 가까웠다. 15홈런 51타점을 남겼지만 타율이 2할1리에 머물렀다. 소속팀도 최종전에서 져 승률 0.0001 차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티켓을 놓쳤다. 이승엽은 책임을 절감하고 스스로 오릭스 유니폼을 벗었다. 탈퇴 기자회견을 통해 “프로는 성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기대했던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며 “더 힘을 발휘하지 못해 죄송하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책임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일본에서의 부진은 처음이 아니었다. 왼 엄지 수술을 받은 이후부터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성공적인 국내 복귀는 당연히 장담할 수 없었다. 이승엽은 지난해 11월 7일 가진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대하는 팬들이 많은데 성적이 조금 부담된다. 내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라고 했다. 이어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냉정해지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걱정거리는 하나 더 있었다. ‘이승엽이 돌아오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라는 좋지 않은 소문이다. “여기(삼성) 와도 뛸 자리가 없다. 일본에서 은퇴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밝힌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의 발언으로 이전부터 기류는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선 감독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당시 삼성은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재편하고 있었다. 이승엽의 가세는 이들의 입지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류중일 감독의 부름으로 삼성에 복귀한 이승엽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만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킬 유일한 열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즌 초 삼성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시즌 타격 3관왕(홈런·타점·장타율)을 거머쥐며 리그 최고 타자로 거듭난 최형우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2군으로 강등되는 아픔도 겪었다. 함께 1루를 맡기로 한 채태인 역시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내리막을 걸었다. 그 사이 선수단은 조금씩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팀의 불안한 항해에 이승엽은 충분히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베테랑이었다. 차근차근 선수단의 중심을 잡아나갔다. 그 원동력은 성실이었다. 홈경기를 앞둘 때마다 가장 먼저 대구구장에 출근, 남들보다 일찍 경기를 준비했다. 선수단에 학구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다. 특타나 일반훈련에만 몰두하는 후배들에게 타격과 관련한 책을 권하며 이론적 상담을 자처했다. 마해영 XTM 해설위원은 “데뷔 때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남달랐던 친구”라며 “문제가 생기면 밤을 설쳐가며 공부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선수”라고 설명했다. ‘이승엽 효과’는 결국 빛을 발휘했다. 삼성은 한 계단씩 순위 상승을 이루더니 7월 초 선두에 등극했다. 이후에는 한 차례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페넌트레이스 우승.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도 SK를 4승 2패로 제압하고 통산 6번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승엽은 샴페인 세례 속에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올 시즌 자신의 활약에 100점을 줬다. 스프링캠프를 막 마쳤을 때만 해도 스스로 내린 점수는 35점이었다. 8개월 사이 65점이 늘어난 점수. 정체는 다름 아닌 성실이었다. 이승엽은 “올 시즌 전 목표였던 3할 타율과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었다. 최근 몇 년 간 전 경기를 나선 적이 없었다. 홈런 신기록을 세우거나 타이틀을 딴 건 아니지만, 일본에서 돌아온 첫 해를 부상 없이 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팀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야구를 할지 모르지만, 2012년은 나에게 정말 큰 의미다. 그만큼 참 열심히 했다”라며 기뻐했다. 동료들과 어우러져 함박웃음을 짓는 얼굴에서 1년여 전의 고민은 발견되지 않았다. 성실함으로 모든 우려를 불식시킨 이승엽. 그는 진정한 ‘국민타자’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정재훈 사진기자 roz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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