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부자가 더 내야한다

이진수 국제부장

요즘 미국의 TVㆍ라디오ㆍ신문ㆍ잡지 가릴 것 없이 모든 매체에서 세금이 화두다. 연방 정부의 적자ㆍ부채 문제까지 개입되면 논란은 더 뜨거워진다. 한쪽에서는 세금을 깎으면 정부 세수가 줄고 부채는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감세가 경기활성화로 이어져 결국 세수는 늘게 된다고 맞받아친다.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밋 롬니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감세안을 연장하다 못해 더 깎으려 든다. 경제성장을 부추겨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 지출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적어도 부자들에 대해서만큼은 감세를 중단하고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롬니 후보의 표현대로 '일자리 창출자들'에 대한 감세,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대로 '부자들'에 대한 증세가 과연 경제성장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미 의회 도서관 산하 입법ㆍ심의 연구 기구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1945~2010년 미국이 취한 부자 감세가 경제성장ㆍ저축ㆍ투자ㆍ생산성에 기여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되레 부자 감세가 계층 간 양극화만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CRS는 밝혔다. CRS는 미 소득 상위 계층 0.1%가 1945년 미 전체 소득의 4.2%를 가져갔지만 2007년에는 12.3%나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소득 상위 0.1%가 부담한 세율은 40%에서 25% 아래로 떨어졌다. 한마디로 부자 감세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반면 경제성장과 무관하다는 말이다. CRS의 발표에 보수 계층이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워싱턴 소재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CRS가 소득 세율을 낮춰봐야 경제성장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CRS에서 내놓은 분석 결과가 과연 질적 수준을 담보한 것인지, CRS가 과연 독립 기관인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헤리티지재단은 더 나아가 "CRS에서 제시한 자료들이 무엇이든 감세가 경제성장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런 주장은 단순하고 근거가 약하며 사실을 오도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헤리티지재단은 왜 감세가 경제성장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까. 소득ㆍ투자ㆍ저축에 대한 세금을 내릴 경우 당사자는 이로부터 얻는 게 많아지며 이로써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한 헤리티지재단도 자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확증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일단 헤리티지재단의 주장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CRS의 연구 결과는 소득 상위 집단에 대한 감세가 개인 저축과 연결되지 않는 데다 꼭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는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세율을 좀 높여야 경제 성장률이 좀 올라간다. 부시 정부 아래 실시된 감세는 소득 상위 10%에게 전체의 53%에 이르는 혜택을, 0.1%에게 15%에 이르는 혜택을 몰아줬다. 다시 말해 조세정책에서부터 재정정책에 이르기까지 기존 계급구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됐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대공황 이후 최고조에 이르러 소득 상위 1%가 경기회복 첫해 전체 소득 증가의 93%를 가져간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감세정책이 좋은 예다. 당시 연봉 4000만원인 근로자는 66만원의 감세효과를 본 반면 연봉 1억원인 근로자는 1092만원이나 줄어 이들 사이에 16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주식매매 차익 같은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로 세전 소득보다 세후 소득의 불평등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른바 부자 감세의 실체다. 이진수 국제부장 comm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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