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내가 선택하는 것을 팬들이 따라와 주면 좋겠다”
<div class="blockquote">사람들은 이병헌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가십은 끊임없이 그의 사생활을 궁금해 했고, 뉴스 앵커조차 그에게 여자친구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이병헌은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이 선택하고 직조한 인물에 대해 말할 때, 그의 눈은 여전히 청년처럼 빛났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되새길 때는 다시금 장면 속으로 돌아간 듯 뜨거운 목소리로 감정을 재연하기도 했다. 순수하게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어서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선택 했고, 그 재미가 뿌듯해서 시시콜콜 말하고 싶어 하는 남자. 이제는 그의 말을 들어 줄 때도 되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인터뷰부터 뉴스출연까지, <광해> 개봉을 앞두고 짧은 시간동안 다방면으로 홍보에 참여했다. 이병헌: 곧 <레드2> 촬영 때문에 출국해야 하는데, 주연 배우가 덜렁 촬영만 해놓고 가버리면 미안하지 않겠나. 그런데 요즘은 정말 매체가 많더라. (웃음) 쉬운 일은 아니었다. <H3>“여전히 바보스러울 만큼 백치미 흐르는 모습도 많이 있다”</H3>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아무래도 이병헌이 사극을 선택했다는 의외성에 관한 것이었을 텐데.이병헌: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사극을 즐겨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출연 하는 것이 재미있을까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특별히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말하지만 장르는 문제가 아니고 이야기만 재미있고 완성도만 있으면 출연하는 거다. <광해>의 경우도 워낙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다. 막상 영화를 보고나면, 장르에 대한 인상보다는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놀라게 된다. 이병헌이 이렇게 순진한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놀라움 같은 것. (웃음) 이병헌: 그동안 내가 너무 김지운 감독의 세계에 빠져 있어서 그런가. (웃음) 2000년대 이후로 관객들이 보아 온 이병헌의 영화는 주로 어둡고 복잡한 작품들이었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명료한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이병헌: 그런 심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 뭘 하겠다는 앞뒤의 상황과 전략이 없었다. 장르도 캐릭터도 미리 내가 하고 싶은 걸 갖고 있으면, 정말 시나리오를 순수한 마음으로 읽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으면 시나리오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없지 않겠나.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선택이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있었다. 하선이 광대놀음을 보여주는 순간은 왕과 닮은 사람을 발견하는 동시에 의외의 이병헌을 만난 장면이기도 했으니까. 이병헌: 왜 그럴까. 예전에 나는 SBS <해피투게더> 같은 작품에서도 바보스러울 만큼 백치미 흐르는 캐릭터를 하지 않았나. 계속 진지하고 심각한 작품들을 하다보니까 그런 모습들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렇지 나에게는 여전히 <해피투게더>의 서태풍과 같은 성격과 모습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광해>는 90년대의 이병헌을 환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병헌: 안 그래도 동갑내기 기자들에게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사실 요즘 젊은 분들에게 내 이미지는 KBS <아이리스>고, <달콤한 인생>이겠지. 하지만 내 또래들은 너무 오래간만에 보기 좋았다고, 그 모습을 기다렸다고들 하더라. 시사회 끝나고 동료들이나 후배들도 나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었다고, 아주 보고 싶던 원을 풀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나의 편안한 모습에 목말랐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나리오 선택에 사람들의 요구가 반영이 될까. 이병헌: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지.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게 감정과 감성에 의존해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인데, 일단은 그런 감성을 믿는 게 맞다고 생각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면, 거기에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다. 팬들의 요구를 알더라도 오히려 내가 선택하는 것을 팬들이 따라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이번 반응을 보면서 어, 사람들이 그렇구나,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H3>“멜로가 생각보다 부각되어서 놀랐다”</H3>
보는 사람들은 당신의 편안한 모습을 좋아했다지만, 1인 2역이라는 설정은 분명 찍을 때 쉽지 않은 역할이다. 촬영 순서와 별개로 계속해서 인물의 변화를 계산하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이병헌: 촬영은 순서대로 할 수 없지만,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순서대로 읽으니까 처음에 내가 왕의 모습이 얼마나 나오겠구나 생각을 하지 않나. 이 정도쯤이면 왕의 면모가 살짝 드러나겠구나, 여기서는 거의 왕처럼 해도 되겠네 하고 기준을 만드는 거다. 그러면서 연기를 할 때 감독님이 나를 컨트롤 해주기를 바랐다. 왕의 모습도 그렇지만, 멜로의 감정까지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더라. 이병헌: 애초에 제작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 멜로 부분은 약간 구색을 맞추는 기능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하선을 중심으로 허균, 도부장, 내시관, 사월이...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거기서 재미가 발생하는 건데 중전은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했었던 거다. 그런데 다 찍고 나니까 홍보팀 여직원들이 다들 멜로가 강하다고, 멜로로 홍보해도 되겠다고 그러더라. 찍어 놓고 나니까 생각지 못한 부분이 부각 되어서 우리는 깜짝 놀랐었다. 사실 <광해>는 전체적으로 멜로의 감성이 두드러진다. 요약하자면 1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허균과 도부장까지 하선이 매혹해 버리는 이야기니까. 이병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우정이냐, 애정이냐의 문제지 다 정에 관련된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선이 도부장이나 허균과 이별하는 장면들이 특히 드라마적인 힘을 크게 가진다. 이병헌: 허균과 하선의 관계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제일 재미있게 봤던 부분이다. 톰과 제리 같은 애증의 관계인데 마지막에 감동을 줄 때는 많은 감정들이 쌓여 있지 않나. 그래서 마지막에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사관과 신사>에서 흑인 교관과 리처드 기어가 졸업식날 경례를 할 때의 감동과 같은 느낌이기를 바랐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마지막 장면에 허균이 중전과 같이 포구에 나온다. 그러면 멜로는 거기서 완성될 수 있겠지만, 하선이 바라보는 것은 허균이 아니라 중전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허균과의 마지막이 정전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관객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정리 되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종결을 보여주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감독님과 내내 얘기를 했다. 허균과 하선이 그동안 미운 정이건 고운 정이건 쌓인 게 있을 텐데, 진한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일 얘기 말고, 좀 더 퍼스널한 감정이 보이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실제 영화의 엔딩은 그렇다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이병헌: 감독님이 먼저 허균 혼자 포구에 서 있으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거 좋다고 동의를 하면서 나는 허균이 큰 절을 하자고 의견을 냈고, 촬영 하면서 절은 너무 과한 것 같다고 예의를 갖춘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다듬어졌다. 촬영을 하면서 만들어 간 부분도 많이 있었다. 허균의 그런 태도가 공감이 가는 게, 죽어가는 도부장을 찾아 올 때부터 하선은 왕도 아니지만 더 이상 광대도 아닌 인물이다. 이병헌: 하지만 윗사람의 느낌은 분명히 아니다. 도부장에게 돌아 왔을 때도 그건 왜 그랬냐, 원망의 느낌이다. 나도 살아 있어야겠지만, 너도 죽지 말았어야지 하는 고마움과 원망. 니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런 감정이지. <H3>“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뭐가 됐든 확신이 있어야 한다”</H3>
후반의 그런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하선이 “왕이 되고 싶소”라는 말을 하는 것이 설득이 되어야만 했다. 사실상 영화의 성패가 걸린 장면이기도 했을 텐데.이병헌: 그 즈음 하선은 이미 왕의 흉내를 내다가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왕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거다. 원래 광대 출신이고, 배우 출신이니까 얼마나 또 인물에 몰입을 잘하겠나. 왕이 된 것처럼 마음가짐을 갖고, 안에 있는 불덩어리들을 다 토해내고, 하지 말란 짓까지 하면서 명령을 하고, 법까지 바꾸는 그 시점에서 하선은 때려 고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다. 백성의 입장에서 진짜 백성을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도 모자랄 놈들이 당파 싸움이나 하고 힘겨루기나 하고 앉아 있으니, 진짜 백성인 하선이 생각 했을 때는 궁이라는 게 이렇게 엉망진창이구나 얼마나 노여움이 많았겠나. 그런 분노를 바탕으로 왕이 되고 싶다고 한 거지. 왕이라는 직위 자체를 원한 게 아니고. 보통 많은 영화들이 왕위를 광기로 풀어가기 마련인데, 하선은 욕심이 없는 인물이다. 이병헌: 그렇지. 이런 지경이라면 차라리 내가 왕이 되고 싶다는 말이지.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 하면서 하선이 진짜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판타지고, 역사를 왜곡하는 거고, 그리고 영화가 결국 현실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더 좋았다고 생각 한다. 하선이 제 자리를 찾아 가고, 광해가 다시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어떤 느낌이냐면, 뭔가 희망이 보이는 거다. 광해가 승정원 일기를 갖다 놓고 천민 하선이가 며칠 동안 저질러 놓은 일들을 읽으면서 카메라를 응시 할 때에 그걸 노여움이라고 생각 하는데, 그 노여움의 정체는 이 천한 것이 날 이렇게 부끄럽게 만드나 그런 감정인 거지. 그러면서 뭔가 깨달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하선이 떠나고 꿈이 탁 깨진 것 같은 허탈감을 주지만, 지금 다시 돌아온 광해는 옛날의 그 광해가 아닐 거라는 희망 역시 있지 않을까. 그런 미묘한 변화의 지점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영화이기도 했다. 표정만으로 광해와 하선을 구분해서 보여줘야 했는데. 이병헌: 연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정전에서 나오는 장면은 사실 감독님과 이견이 좀 있었다. 나는 충분히 광해답게 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감독님은 영화적으로 약간 트릭을 쓰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여러 테이크를 갔는데, 하면서 나는 다 광해처럼 했다. (웃음) 그리고 감독님은 그 중에서 제일 하선처럼 나온 걸로 아마 오케이 했을 거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만큼 주연배우로서의 고집이 필요했나보다. 이병헌: 고집이라기보다는 카메라 앞에서 최종적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배우의 확신인 거다. 그 확신이 없을 때 자신 없는 연기는 분명 관객도 알아 볼 거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확신을 주려고 한다. <광해> 뿐 아니라 그동안 선택한 인물들은 대부분 내면에 많은 층위를 가진 복잡한 인물들이었는데, 어떻게 스스로를 확실히 신뢰할 수 있었나.이병헌: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인물이 왜 이렇게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지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하는 거다. 물론 내가 모든 인물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으니까 캐릭터에 어긋나는 느낌이 살짝 들 때도 있다. 그러면 감독이나 작가와 얘기를 많이 한다.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설득을 당하든, 상대를 설득 시키든 결론을 봐야 카메라 앞에서 자신 있게 표현을 하지 의견 대립만 하다가 애매모호한 상황으로 연기를 할 수는 없는 거다. 틀렸더라도 확신을 해야 한다. 잘못 알았을 때 후회를 하겠지만, 확신 없이 애매모호하게 연기 하는 게 더 싫다. 곧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시작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한국에서만큼 편하지 않을 텐데 확신을 갖기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병헌: 사실 되게 어렵다. (웃음) 사람들이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하는데, 그건 일상 대화고. 촬영장에서 감독과 배우가 하는 대화는 굉장히 깊고 추상적이다. 질문을 해 놓고도 뭐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 촬영을 하는 게 참 불편하지. 그러니까 나중에는 몇 번 물어보다가 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도 아이구, 그냥 안 물어 보게 되고. 나 혼자 생각하면서 이게 맞겠지 싶은 답을 찾아 가는 거다. 하지만 어쨌든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뭐가 됐든 확신이 있고 소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있는 인물이 되겠나. 그렇다면 살아 있는 이병헌은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인가.이병헌: 어우,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런 점에서 좀 흐리멍덩하다. 진짜 내 삶은 뭐 하나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일 할 때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서 좀 더 확신을 갖고 싶어 하고,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까 나도 쉴 틈이 필요하다. 그게 평상시에 드러나는 건데, 넋이 나가 있거나 덤벙대고 어제 뭐 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그렇다. (웃음) 데뷔 초의 작품들에서 봤던 이병헌에 가까운 모습인 건가.이병헌: 아마 그럴 거다. 심지어 우리 감독님도 처음에 나를 <광해>에 캐스팅 하는 것에 반신반의 하셨다면서 내가 연기를 엄청나게 계산하고 준비해서 보여주는 스타일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촬영 후반에서야 나에 대해 의외라고, 현장에서 순발력으로 계속해서 다른 테이크를 보여주는 배우일 줄 몰랐다고 하는데, 그동안 만들어진 이미지와 현실의 나는 상당히 다르다. 카메라 밖에서 까지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살겠나. 그래서 일을 하지 않을 때의 나는... 추상적인 단어를 한 눈에 보여주자면 (의자에 늘어지듯 기대며) 이렇다. (웃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윤희성 nine@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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