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품격│② 이일화 “인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며 연기한다”

<div class="blockquote">한 떨기 꽃 같은 자태, 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맑은 목소리, 사슴같이 그렁한 눈망울. 진부하지만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불혹의 나이를 지난 것과 상관없이, 배우 이일화는 그런 여인이다. tvN <응답하라 1997>에서 ‘빡신’ 부산 사투리를 쓰며 남편(성동일)과 부부싸움을 벌이고, H.O.T의 광팬인 딸 시원()를 팍팍 밀어주는 화통한 아줌마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20년을 쉽지 않게 달려 왔지만 아직도 순간순간 드러나는 천진함은 그의 천성인 동시에 그로부터 “오빠”라 불리는 성동일에 대한 부러움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매력이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정성스레 쌓아 온 여배우들에게 바치는 ‘언니의 품격’ 두 번째 주자, 이일화는 맛있는 밥 한 상 차려놓고 조곤조곤 얘기 좀 더 나누고 싶어지는 고운 큰 언니 같았다.
<H3>“모든 캐릭터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H3>
<응답하라 1997>의 ‘시원 엄마’를 통해 이일화라는 배우에게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됐다. 이 예상외의 인물을 어떻게 연기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일화: 김성령 언니를 굉장히 좋아하고 서로 친하다. 언니가 바빠서 못 하는 작품이 있으면 나한테 올 때가 종종 있어서 “언니, 좀 많이 쉬어. 그래야 나한테 올 거 아냐” 농담을 할 때도 있다. (웃음) 그런데 몇 달 전에 만나서 “나 이번에 이미지 좀 바꿔보고 싶어. 사투리 쓰고 걸걸한 엄마 역 좀 해 보고 싶어” 했더니 언니가, 당시 <아부의 왕> 같이 찍고 있던 (성)동일 오빠가 같이 하자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영화 스케줄 때문에 못 할 것 같다는 거다. 그래서 소개를 받아 <응답하라 1997>에 들어가게 됐는데, 사실 처음에 신원호 감독님은 걱정을 좀 하셨다. 내가 워낙 조용하고 여성스런 성격이라 평소 말 하는 걸 보면 대본의 캐릭터를 떠올리기 힘드셨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잘 해낼 자신이 있었고, 첫 촬영 이후 감독님도 너무 맘에 들어 하시며 고마워 하셔서 나도 참 감사했다. 굳이 이렇게 급격한 이미지 변신에 도전한 이유는 뭔가. 이일화: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정해졌다. 캐릭터 연령대가 이모, 엄마에서 더 낮아지지는 않을 테니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할 수도 없을 거고. 물론 그런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나는 카메라 앞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데 이것저것 가리다 평생 열 작품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좀 좁게 가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경험도 했고 삶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으니까 연기에 대해서도 폭넓게 도전하고 싶었다. 결과에는 만족하나. 이일화: 중학교 1학년인 딸애가 평소 내 작품을 잘 안 본다. 정용화, 박신혜 같은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했던 MBC <넌 내게 반했어> 정도만 챙겨 봤지. 그런데 이번 작품을 같이 보면서 재미있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이 아이가 재밌으면 다른 친구들도 재밌어 하겠구나’ 싶었다. 지금 출연 중인 KBS <사랑아 사랑아> 현장에 가면 내 또래나 더 연세 많으신 스태프들이 “<응답하라 1997> 봤다, 작품 좋더라” 해 주셔서 참 고맙다. 만약 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으면 내가 이미지 변신을 하려던 노력도 묻혔을 텐데, 유쾌함 속에서도 잔잔하게 감정을 이끌어가는 작가와 감독의 힘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시원 엄마’ 로서의 이일화가 낯선 만큼, 배우로서 낯선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이일화: 경상북도 영양이 고향이고 부산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스무 살 무렵 서울 올라와 SBS 공채 탤런트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사투리 고치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 땐 사투리 쓰는 엄마한테 “엄마 나랑 얘기하지 말자” 하면서 상처도 드렸는데, 계속 연기를 하다 보니 배우에겐 사투리도 큰 재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한동안 잊고 있던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주변 경상도 분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고스톱도 점수 내는 것부터 다시 배웠다. 고스톱은 조금 칠 줄 알지만 원래는 그렇게 즐겨라 하지 않는 분야다. (웃음) 그리고 시원 엄마의 캐릭터는 우리 엄마로부터 가져온 부분이 있다. 사실 우리 엄마도 참 다소곳한 여성이시지만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욱, 욱 하는 경상도 엄마의 기질이 있으셔서 그런 느낌을 담고 싶었다. ‘경상도 엄마’와 ‘전라도 아빠’라는 설정도 재미있지만, 상대역 성동일과의 호흡이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다. 이일화: 동일 오빠가 SBS 공채 탤런트 1기 출신이고 내가 2기다. 오빠는 그 때도 후배들 잘 챙기고 말씀도 참 재밌게 하는 선배였다. 함께 연기를 한 건 처음이지만 이번에 동일 오빠를 만난 게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오빠와는 원래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함께 연기를 한 건 처음이다. 그래서 오빠의 특기인 애드리브도 초반에는 어떻게 튈지 몰라 다 받아주질 못했는데 촬영하면서 서로 알아가다 보니 나도 그냥 다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부부 싸움을 하다 “때리바라!” 하면서 달려드는 장면에서도, 촬영 전에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오빠의 기를 받으니까 나도 모르게 더 큰 소리가 나왔다. (웃음) 동일 오빠 덕분에 내가 원래 할 수 있는 역량의 두 배가 넘도록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이좋은 부부 역이다 보니 자동차 안에서의 코믹한 러브신도 화제가 됐다. 이일화: 원래 대본의 수위는 조금 더 야했는데 감독님이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해 주셨다. 한 신 찍을 때마다 동일 오빠 연기 때문에 스태프들도 다 웃고, 나도 카메라에 들킨 부분이 조금씩 있는데 감독님은 “웃기는 남편 때문에 웃을 수도 있다”며 그냥 넘어가신 부분이 있다. 그런 여유로움, 편안함이 또 이 작품의 장점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의 자동차 장면은 아이랑 같이 보다가 당황해서 “어머, 어떡하지? 미안한데 잠깐 눈 좀 감으면 좋겠다” 그랬다. 괜히 민망하더라. (웃음) 공부는 꿈도 안 꾸고 연예인만 따라다니는 시원이는 보통 한국의 부모에겐 걱정스러운 딸이겠지만 극 중에서는 엄마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원이 있다. 십대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이일화: 어떤 엄마든 그렇게 자기 바람을 내려놓고 이해해주는 게 쉽지 않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딸애를 보며 늘 생각하는 건, 이 아이가 건강하게 밥 먹고 즐겁게 웃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는 거다. 같은 엄마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캐릭터도 있다. <사랑아 사랑아>에서는 아주 단아한 성품의 엄마 역인데, 아들이 내가 원하는 짝과 결혼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굉장히 흥분해서 반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감정은 100% 공감하지 못하니까 연기하면서도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시원 엄마는 내가 되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은 엄마 상이다. 시원 엄마의 특징 중 하나가 손이 크다는 건데, ‘사랑의 밥차’ 등 봉사 활동에서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다뤄 본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일화: 그 현장에서는 정말 손이 빨라야 한다. 줄 서서 기다리시는 분들은 밥이 늦으면 막 화를 내기도 하셔서, 나도 상처받는다. (웃음) 그러다 보니 야채 썰 때 칼질도 빨리, 국이랑 밥 뜰 때 주걱이며 국자 빨리 다루는 것도 몸에 뱄다. <H3>“어릴때는 뭔가가 잘못되면 다 내 탓이라 생각했다”</H3>
고등학교 시절 사진 모델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과는 데뷔 과정이 사뭇 달랐을 텐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이일화: 고등학교 때 어느 날 지역신문을 봤는데 무슨 모델 선발대회가 있다는 거다. 부산에선 그런 기회가 적으니까, 당시 어울리던 친구 넷 중 다른 한 명과 응모했는데 둘 다 붙었다. 그래서 취미로 모델을 하던 중 마침 부산에서 전국사진촬영대회가 열렸다. 모델이 어떤 장소에서 포즈를 취하면 사진작가 수십 명이 바쁘게 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옮겨서 또 우르르 찍는 식이었는데 어릴 땐 화장실 가고 싶어도 쑥스러워 손도 못 들던 아이가 무슨 깡으로 그걸 했는지 모르겠다. (웃음) 어쨌든 열심히 한 덕분에 금상을 탔다. 그리고 당시 논노 그룹에서 베스트 드레서 선발대회를 열었는데, 이건 ‘끄레아또레’나 ‘나인투나인’ 같은 매장에서 옷을 사 입고 사진을 찍어 보내면 전국에서 온 사진을 모아모아 최고를 뽑는 방식이었다. 나도 간신히 용돈을 모아서 나인투나인의 보라색 조끼와 반바지를 사 입고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본선까지 올라갔고 나인투나인 베스트 드레서로 뽑혔다. 상금을 받아다 드렸더니 그 전까진 ‘네가 뭘 한다 그러냐’ 하시던 엄마도 굉장히 놀라고 좋아하셨다. (웃음) 어린 시절에 그렇게 내성적이었다면 연기를 시작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겠다. 이일화: 무대에서 연기하는 건 꿈도 못 꿨다. 모델 하면서는 그냥 CF도 찍고, 돈 많이 벌고 싶다는 막연한 꿈 정도를 가지고 서울에 왔다. 그런데 그 때는 ‘비디오 가수’라고 해서 노래를 좀 못 해도 가수를 만들어주는 분들이 있었고, 뮤직 잡지 관계자 중 어느 분이 목소리가 맑으니 노래를 해 보라고 해서 그걸 준비하던 중 우연히 연극 <굿 닥터>에 출연하게 됐다. 소녀 역과 창녀 역을 둘 다 맡게 됐는데, 그나마 소녀 역은 캐릭터 자체가 막 긴장하는 걸 드러내는 역할이었지만 창녀 역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못 하겠다는 걸 연출 선생님이 하라고 하셨다. 처음 무대에 섰던 날은 끝나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연출 선생님도 소녀 역에 대해서는 처음 치고 잘 했다고 하셨지만 창녀 역에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내가 봐도 못 했거든. (웃음) 그런데도 하다 보니 연기라는 작업에 재미를 느꼈고 내 가능성을 조금은 보게 됐다. 신인 시절의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던 것 같나. 이일화: 굉장히 겁 많은 신인이었다. 항상 내가 누군가에게 실수한 거 아닌가, 나 때문에 상처받았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뭔가가 잘못되면 다 내 탓이라 생각했고, 주어진 걸 무조건 완벽하게 해 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MBC <한지붕 세가족>에 무용 선생님 역으로 출연하게 됐을 땐 첫 촬영을 하고 집에 돌아와 종일 울었다. 너무 창피하고, 감독님이 나를 뭘로 생각하실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며 연기한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인데, 그걸 알고 고쳐 나갈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신인들, 후배들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지적하지 않는다. 배우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라 그러면 오히려 상처받고 혼란스러워 하니까 그 친구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웃어주고 받아주려 한다. 한창 스타로 떠오르던 중 결혼과 이혼을 거쳤고, 외국으로 떠나며 몇 년간 활동을 접기도 했다. 연기를 떠나 있는 사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일화: 연기를 그만두게 되면서 딱 그 시점에 너무 좋은 작품을 거절했다. MBC <허준>의 예진 아씨 역이 들어왔었다는 걸 나도 몰랐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이병훈 감독님께서 염두에 두셨던 배우 중에 내가 있었다는데, 그 때는 일이 잘 안 되려고 그랬겠지만 역시 너무 아쉬웠다. 떨어져 있다 보니 연기에 대한 그리움도 새록새록 생겨났고, 4년 만에 호주에서 돌아왔을 땐 당장 아이도 키우고 일을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아는 분 소개로 고급 시계를 다루는 매장의 샵 매니저 아르바이트도 한 달 해봤는데 너무 힘들었다. 요즘 가끔 홈쇼핑 방송에 출연할 때도 있지만 “와, 이거 너무 좋아요. 한 번 사 보세요” 하는 걸 원래 못하는 성격이다. 매장에 아무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 매일이 바늘방석이었고, 그래서 연기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릴 때 MC도 해 봤지만 적성에 안 맞았고, 역시 대본에 나를 맞춰가는 일이 가장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인 시절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의 상냥한 진행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일화: 그 프로그램은 다행히 즐겁게 진행했다. 생방송처럼 쭉 이어가는 게 아니라 한 코너 찍고 VCR 보고, 다음 코너 잠깐 찍고 또 VCR 보는 식이라 긴장도 덜 했고 홍은철 선배님과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지금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감독을 보면서도 느끼지만, 연기자는 프로그램을 이끄는 리더의 인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참 중요하다. <H3>“마음의 여유를 갖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어렵다”</H3>
한 번 놓았던 연기로 돌아온 뒤에는 과감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해 OCN <신의 퀴즈 2>에서는 병 든 남편과 딸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싸이코패스 역을 맡기도 했다. 이일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살인을 하는 사람이든 정말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든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고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고 내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학기 동안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경험해보고 싶었고, 그런 면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있었다. 영화 <반두비>에서 고등학생 딸(백진희)보다 연하의 남자친구(박혁권)에게 더 신경 쓰는, 다소 철없는 엄마 역도 인상적이었다. 이일화: 나는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극 중 엄마가 그렇듯 딸에게 잘 해 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반성하는 순간도 오지만, 엄마도 사람이니까 자기 감정을 더 우선할 때가 있다. 물론 그 역할을 연기하면서 가끔은 ‘아유, 이건 아닌데’ 싶기도 했지만, 그 순간적인 감정들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실제 딸에게는 어떤 엄마 같나. 이일화: 정말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딸은 예민한 시기라 엄마를 별로 안 좋아한다. 맨날 못생겼다고 하고. (웃음) 아이가 어릴 때 일 때문에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사춘기만은 잘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화살이 날아오고 엄마를 무시해도 잘 기다려 주면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을까. 지금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응답하라 1997>을 통해 배우로서새로운 색깔을 각인시켰는데,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해 꿈꾸고 있는 바가 있다면. 이일화: 정말 심한 악역을 비롯해 어떤 장르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보고 싶다. 물론 어떤 역은 돌멩이도 맞을 거고, 어떤 역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갈 수도 있지만 또 정말 나와 잘 맞는 역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도 있을 거다. 어차피 인생은 당장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작은 비중이라 해도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대신 내가 들어가서 더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한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벌써 20년째 연기를 하고 있고, 그 사이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이 지나온 나이를 지금 거치며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일화: 내가 항상 행복하고 즐겁고 기분 좋기를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기도 하고, 결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흔히 “네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라고 하는데, 물론 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고,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도 있다. 그럴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처럼 나의 고통을 내려놓고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어렵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볼 때는 정말 담담한 것처럼, 내가 정말 바닥에 내려가 있을 때도 나에게 너무 애정을 갖기보다 딱 한 발만 물러나 가만히 지켜보면 힘이 생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아픔도 상처도 지나가고 다시 즐거움이 오게 되어 있다. 물론 그것도 잠깐 한 때고, 또 다른 아픔이 온다. 그러니까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답은 그렇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최지은 five@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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