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김광균 '3.1날이여! 가슴 아프다' 중에서

조선독립만세 소리는/나를 키워준 자장가다/아버지를 여읜 나는/이 요람의 노래 속에 자라났다/아 봄은 몇 해만에 다시 돌아와/오늘 이 노래를 들려주건만/3.1날이여/가슴 아프다 (…)
■ 이 시가 눈에 들어온 까닭은 1930년대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던 멋쟁이 시인인 김광균이 이런 꾸밈없는 방언(放言)을 과연 내놓았던가 하는 기이함 때문이다. 우린 '와사등'과 '추일서정'의 엑조틱(exotic)한 표현들과 '설야'의 머언 곳에 옷 벗는 소리의 섹시함에 섣불리 취한 까닭에 시인 김광균의 전모를 살피는데 소홀히 해 왔는지 모른다. 그는 1914년생이며 개성 사람이다. 삼일운동 때는 여섯 살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넘어뜨린 이후 옛수도이던 개성은 철저히 폐허화되었고 그곳에 살던 지식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천지 사방의 개성상인이 되었다. 그 지역 아래에 흐르는 차별과 설움의 코드를 기억하며, 삼일운동에서 비로소 통합된 겨레의 함성을 맛보았던 어린 시인. 그때 이미 아버지도 잃었던 그는, 저 만세소리를 요람처럼 여겼다.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를 읊었던 그의 내면 깊이, 대한민국 만세의 저 핏빛 전단지도 낙엽처럼 날리고 있었다.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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