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기자
황영미 한국피자헛 상무<br /> <br /> ▲1966년 경북 문경 출생 ▲1988년 이화여대 경영학 학사 졸업 ▲1988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입사 ▲1993년 바이엘 코리아 인사 C&B 팀장 ▲2000년 딜로이트 컨설팅 채용책임자 ▲2002년 메르세데스-벤츠 인사책임자 ▲2007년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이사 ▲2011년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상무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유난히 인복(人福)을 타고 난 사람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꼭 한 둘은 있다.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의 특징은 '미소'가 아닐까 싶다. 웃는 낯은 상대방에 호감을 준다. 그 웃음이 순간의 가식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자신의 것인지는 보면 안다.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인데 뚜렷한 주관이 있고, 때론 고집스러우면서도 냉철하게 일처리를 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사람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을 기자도 종종 목격했다.외국계 회사에서 인사(人事) 업무만 꼬박 20년.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과 연관된 일만 해 왔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수십만장의 이력서와 인터뷰를 하면서 얼굴을 맞댄 수천명의 구직자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한 우물을 판 보람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얻는다.현재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를 맡고 있는 황영미(46) 상무는 "(인사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란 인식이 많다"면서도 "올바른 인재를 채용하고 육성해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서울 대치동 본사에서 만난 황 상무는 다짜고짜 고3 수험생인 딸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주 휴가였는데 집에서 딸 뒷바라지하느라 여행을 가지 못 했다고 말했다. 수험생 엄마 스트레스로 머리도 짧게 잘랐는데 사진이 잘 나올지 걱정했다.영락없는 수다쟁이 엄마의 모습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180도 바뀌었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그는 "휴가 기간 힘들었던 것은 시간이 생겼지만 딸을 위해 당장 해줄 것이 없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외국계 회사 인사 책임자로서, 고3 수험생을 둔 워킹맘으로서, 한 몸으로 7~8개 역할을 동시에 하는 멀티 플레이어 황 상무의 삶은 어땠을까.◆MBA 하나 없는 '토종 워킹맘'"해외 MBA 하나 없이 뭘 믿고 버티고 있는 거니? 너무 양심 없는 것 아니야?" 하루는 황 상무의 친한 친구가 시비를 걸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별 다른 학위 없이 외국계 회사에서 20여년을 몸담고 있는 그가 부러웠던 모양이다.황 상무는 모교 은사의 추천으로 1년 반 잠깐 근무한 회사를 제외하고는 줄곧 외국계에서 일했다. "진정한 인사(HR) 리더로 성장하겠다"는 새내기 시절 세운 목표 달성을 위해 회사는 여러 곳을 옮겨 다녔지만 '인사' 업무는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처음 외국계 갔을 때 영국인 사장님이 멀리서 저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숨이 탁 막히면서 숨기 위해 두리번거렸죠. '굿모닝' 그 말 한마디가 안 나오더라고요. 말문 트이는 데만 보름이 걸렸어요."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법한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황 상무는 당당했다. 그는 외국인 임원 앞에서 30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하는 일에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면 어학은 저절로 따라 온다"고 말했다.흔히 여자라면 남자보다 어학에 능할 것이라는 사회적인 편견에 부담을 갖는 여성들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면접)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외국계라면 어학 능력이 첫 인상을 좌우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준비를 할 필요는 있지만 발음이 얼마나 유창한지보다는 전달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해요. 콘텐츠(알맹이)를 먼저 생각하세요."◆20대 후반에 찾아온 첫 사춘기 잊지 못해지금은 후배 직장인 앞에서 떳떳하게 나설 수 있지만 그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 상무 표현대로 "미친여자처럼 계속 직장 생황을 하고, 스스로 이 길을 원했던 계기"가 있었다.'공부하라'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개방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 대학 졸업까지는 순탄한 인생이었다. 교수 추천으로 첫 직장에도 어렵지 않게 입사했다. 직장 새내기로 1년여가 지났을 무렵, 항상 웃음기 가득하고 밝은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그늘이 졌다. 대학 동기가 모두 굴지의 대기업으로 입사할 당시만 해도 "나는 하나의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아!"라며 홀로 다른 길을 택했는데 후회가 막심했다."과감하게 때려치우고 꼬박 1년 반을 집에만 있었어요.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서는 인생을 살아도 의미가 없겠다 싶었죠. 아침밥을 먹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 시계를 보면 어느덧 오후 5시더라고요."그렇게 외국계 회사와 인연이 시작됐다. 바이엘 코리아에 인사 담당 팀장으로 새 출발을 한 황 상무는 이후 딜로이트 컨설팅 채용 책임자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인사 책임자를 거쳐 2007년 한국피자헛에 합류했다.도전의 연속이었다. 최종 목표인 인사 리더가 되기 위해 계획한 대로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 1999년 후반 컨설팅 붐이 일어났을 땐 '채용'을 직접하고 싶은 마음에 딜로이트로 이직했다. 매일 밤 12시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황 상무는 "여성 직장인으로서 체력이 달리지 않으려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 자기 관리를 시작했던 때"라고 회상했다.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서는 최초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16년 만에 인사를 책임지는 임원 자리에 올랐다. "하루는 1억5000만원짜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호주인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싸우다 그만 울어버렸어요. 격렬하게 싸웠던 기억이 나요. 인사 책임자로 열정은 앞섰는데 직원과의 관계는 성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죠."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어느 날, 엄마의 관심이 적었던 탓인지 딸아이가 아파서 직장을 그만둘 지경에 이르렀다. 2년여 아이 곁을 지키고 난 뒤 컨설팅 회사에서 재기한 그에게 한국피자헛은 인연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황 상무는 한국피자헛이 채용한 첫 여성 인사 전문가다."피자헛 입사 첫날부터 야근을 했어요. 매일 배움의 연속이었죠. 사실 나이 많은 여자가 인사 담당 임원으로 와 배타적이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즐겁게 같이 일하는 피자헛만의 기업 문화에 매료되는 것은 순식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