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파이'·'공포의 외인구단'을 기억하시나요

1959년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 SF만화 '라이파이'

1980년대 인기를 끌던 야구만화의 포스터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책에서 웹툰, 애니메이션, 게임으로 매개체가 변한 만화시장. 그러나 종이만화의 향수는 40~60대 중년들에겐 청년시절 추억으로 아련히 남아있다. 전쟁이 끝나고 50년대 말 우리나라 최초의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만화'인 '라이파이'.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름잡던 '야구만화'가 그것이다.라이파이는 지금의 60대들에게 '아하'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는 만화다. 출간된 당시는 1959년, 한국전쟁 이후 6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가난을 벗어나야 했고 산업을 키워야 하던 시절, 그 당시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키워주던 만화이기도 했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철부지 까치', 허영만의 '흑기사'는 당시 야구 열기만큼이나 대단했다. 상상을 초월했던 인기를 구가하던 1960~70년대 고교야구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고교야구 스타들이 프로의 무대로 옮겨갔다. 야구에 대한 환호는 그라운드에서만이 아니었다. 1960년대 초 야구영웅을 그린 야구만화에 이어 이상무, 허영만, 이현세 작가가 야구만화 작가 반열에 오르면서 1970~1980년대를 주름잡았다.이러한 추억의 만화역사를 되짚어보고, 우리시대 만화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18일부터 5일 동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12). 해년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이번이 16회째다.

한국 SF만화의 전설, 만몽 김산호 화백

◆최초의 SF만화 '라이파이' 작가 김산호 화백 "신선함, 변화의 흐름을 쫓아라"= 전시장 입구 왼쪽으로는 라이파이를 만든 만몽 김산호 화백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18일 오후 찾았던 특별전 부스에는 라이파이를 소개하는 캐릭터들, 조형물들이 비치돼 있다. 미국에는 '수퍼맨', 일본에는 '아톰'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라이파이'가 있었다. 라이파이의 가슴에는 첫글자 'ㄹ'이 새겨져 있다. 한국에도 영웅캐릭터를 만화로 만들어 낸 이가 바로 김산호 화백이었던 것이다. 라이파이는 그의 정체를 쫓는 김탐정에 의해 베일이 벗겨지는데,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이나 인공안개에 숨어있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의 사나이다. 만화에서 라이파이가 펼치는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 격투기술은 홍콩 배우 이소룡이 나타나기 십년 전부터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부스에서 직접 만난 김산호 화백(남 72)은 "수난이나 핍박의 역사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독립해 이긴 역사를 찾아보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웅 라이파이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비단 국내에서만 유명한 인사가 아니다. 그는 미국 찰튼 코믹스사의 전속작가이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김 화백은 최고의 인기작가로서 명성을 얻은데다 한국의 작품검열이 컸던 시절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펴낸 작품들은 '샤이안 키드', '하우스 오브 양' 등이 있고 워렌 출판사에서 괴기담 만화집에 실린 '용녀'는 영어, 불어, 에스파냐어 등으로 번역돼 17개국에서 발간됐다. 이처럼 외국에서도 각광받던 그의 작품들은 한국과 중국을 소재로 다뤄진 것들이었다. 김 화백은 "미국사람들이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동양문화와 역사, 한국이란 나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잘 먹힌 것"이라고 말했다. 김산호 화백은 만화가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 시대 최고의 작가다. 그는 70대로 60대 팬클럽을 가지고 있다. 팬클럽 회장이 바로 박재동 화백이다. 김 화백은 "아이유만 팬이 있는 게 아니다"면서 "칠십 먹은 사람이 육십 먹은 팬들과 함께 미팅도 하는데 귀엽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다.항상 신선함을 추구하는 김 화백은 만화활동뿐 아니라 미국에서 관광, 패션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거뒀고 1988년 사업을 정리하고 우리역사연구에 뛰어들었다. 만주, 바이칼,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두루 살피며 '한민족'을 중심으로한 역사회화작품 2000여점을 그려냈다. 김 화백은 "이제는 시대가 변해 종이만화는 죽고 애니메이션, 웹툰이 대세가 돼 가고 있다"면서 "나도 컴퓨터 작업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젊은 작가들이 옛 매체인 종이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변화하는 기술과 세상, 취향을 따라가 그 안에서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종이만화시장이 쇠퇴한다고 하지만 도구만 바뀌었을 뿐 '만화' 산업의 성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웹툰 등의 인기가 단행본 만화시장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웹툰 서비스 이용통계에서 네이버 만화는 지난 5월 한 달간 약 710만명의 순방문자수와 월평균 92.19분의 체류시간을, 다음의 '만화 속 세상'은 각각 약 299만명과 57.12분을 기록했다. 대형 포털 웹툰의 월 순방문자가 1000만명을 넘어 웹툰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의 매출규모는 애니메이션 산업이 약 1355억원이며 캐릭터 산업은 1조8829억원으로 나타났다. 수출규모는 각각 352억원, 1116억원 수준이었다.

SICAF페스티벌 행사장에서 '야구 만화 기획전'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추억의 '야구만화' ..'독고탁', '이강토'. '오혜성'을 기억하시나요= 김산호 특별전 바로 옆에는 야구만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1960~90년대까지 인기를 누렸던 야구만화책들이 연대순으로 비치돼 있고, 해설을 해뒀다. 이상무, 허영만, 이현세 등 작가들이 야구만화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라서면서 야구만화는 1970~80년대 만화계의 주축 장르가 됐다. 만화 주인공인 독고탁, 이강토, 오혜성은 온갖 애증을 가슴에 담고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군부의 검열이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던 시대여서 대다수의 만화가가 비교적 검열에서 자유로운 야구만화 창작에 달려들었다.이현세의 '철부지 까치'는 1983년 '공포의 외인구단'에 몇 달 앞서 오혜성의 캐릭터를 각인시킨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허영만 1985년 어깨동무에 연재한 '흑기사'는 야구 만화중에서 가장 강렬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한동수와 백업 포수 이강토의 운명이 엎치락뒤치락 뒤바뀌는 이 드라마의 모델은 알렉산드르 뒤마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허영만 작가는 어린 시절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을 즐겨 읽었고 그 외에도 빠져들었던 소설이 바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 이 모(남 51)씨는 "1970년대 야구 붐인 시절 '공포의 외인구단'을 몇 번씩이고 엄청나게 읽은 기억이 있다"면서 "글러브나 야구방망이를 부잣집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었던 가난한 시절 야구만화들은 야구를 하고 싶은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준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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