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다. 저녁모임에서 옆에 있던 지인이 한숨을 짓기에 왜냐고 물었더니, "직장동료인데 무상급식에다, 무상보육, 무상교육으로 내 돈 들어갈 일 없어 잘됐다고 하지 않나! 자기 호주머니에서 당장 돈 안 나간다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나중은 어떡하라고." 금년 들어 복지예산 증가 등으로 지자체 재정악화가 문제되고 있지만, 주민투표 당시만 해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눈칫밥 먹여서야 되겠냐'는 주장이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재정, 부자지원 문제 등의 논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인기있는 정책을 택하려 할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국민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공약개발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총선 전에는 복지공약이 주를 이뤘으나 총선 후에는 복지와 함께 경제성장을 언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수출감소와 경제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성장을 더 이상 뒷전으로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성장과 복지는 따로 생각할 수 없다. 1997년 외환부족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최근 유럽재정문제 등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이 이른바 '위기 피로감'에 빠지고 복지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나라의 곳간을 채워줄 성장을 챙겨야 한다.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장사는 될 때 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잠시 주춤할 때 우리 기업들이 앞서 나간 사례가 많이 알려지고 있는 데 이런 때일수록 기업의 발전동력이 가속화돼야 한다. 잘 나가는 기업의 발전동력을 꺼뜨려서는 안된다.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데 이를 조정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중소기업의 보호를 위한 대중소상생협력법, 그리고 대형마트ㆍ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등 정부는 여러 법에서 규제와 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원칙의 예외인 규제와 조정을 늘리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가 우리경제의 원동력인데 이러한 성장동력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ㆍ중소기업의 양극화에 대해서도 좀 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올 4월 발표된 KDI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증가율(9.8%)이 대기업(8.7%)보다 높게 나타났다. 통계상으로는 중소기업 전체가 대기업보다 나빠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현 정부들어 대중소기업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계속 줄다가 2010년 확대되면서 양극화 주장에 힘이 실렸으나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작년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5.44%)이 대기업(5.38%)을 앞질러 분명치 않다. 다만, 영업손실을 기록한 중소기업이 이전보다 늘고 있는 점은 간과하기 어렵다. 이처럼 양극화의 실재 여부가 불명확한 가운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턱대고 규제부터 해서는 곤란하다. 대기업을 규제해서 중소기업의 경영여건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하지 않더라도 시장과 소비자가 기업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노키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일등기업도 시장과 소비자를 외면하면 한순간에 밀려날 수 있는데 규제까지 발목을 잡아서는 기업하기 힘들어진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모으고 조율하며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한 쪽 귀만 열고 다른 쪽을 닫아서는 안 된다. 선거를 앞두고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고 기업한테는 사기를 불어넣는 좋은 정책을 기대해 본다.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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