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천우진 기자]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11일 오전 10시 서울북부지방법원 701호 민사중법정에 국내 첫 시각장애인 판사인 최영 판사(32)가 다른 배석판사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순간 최 판사에게로 모든 시선이 쏠렸다. 조용한 재판장에 취재진들의 플래시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법정은 '첫 시각 장애인 판사의 재판'이라는 한국법원사의 역사적인 현장을 참관하러온 취재진과 방청객으로 열기가 가득했다. 그런 의미를 이해한 듯, 연한 갈색 넥타이 차림에 법복을 입은 최 판사는 엄숙한 얼굴로 취재진과 변호인들을 바라봤다.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최판사와 방청객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 법정도 긴장감이 넘쳤다. 곧바로 최 판사는 보조인의 도움으로 재판정 왼쪽 배석판사석에 자리를 잡았다. 최 판사는 재판장에 마련된 노트북에 자신이 갖고 온 USB를, 왼쪽 귀 한쪽에 이어폰을 꽂고 재판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최 판사는 음성으로 녹음된 재판기록을 검토하며 계속해서 재판 진행상황을 꼼꼼히 챙기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 판사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음성변환 프로그램에서 재생된 음성을 이해하는 능력이 일반인보다 세배나 빠르다. 사법시험 준비기간은 물론 사법연수원 시절 무수히 훈련하며 터득한 능력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방청객 모두 소리 없이 박수를 치는 듯 했다. 최 판사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은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8년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고 점차 시력이 나빠졌다. 최 판사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후 시력이 악화돼 결국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법관을 향한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법률서적을 음성파일로 변환해 듣는 방법으로 공부를 계속해 다섯 차례 도전 끝에 2008년 사법시험(50회)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정진한 최 판사는 41기 사법연수생 상위 40위권대 성적으로 연수원 과정을 수료해 판사로 지난 2월 임용됐다. 최 판사는 연수원 생활 2년동안에도 음성변환프로그램을 통해 자료를 파악하고 실제 재판업무를 준비해왔다. 한편 북부지법 관계자는 "최 판사는 음성으로 녹음된 재판 기록을 두번 정도 들으면 다 기억할 정도로 탁월한 것 같다"고 귀뜸했다.천우진 기자 endorphin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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