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주시오' 새벽부터 줄 선 저축은행은 지금

추가 영업정지 발표 앞두고 저축은행 가보니…

경영상태가 부실한 저축은행들의 추가 퇴출을 앞두고 불안을 느낀 예금주들이 4일 서울 강남의 한 저축은행 본점에 몰려 있다.

오전 7시. S저축은행 서울 마포 지점.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 고객 20여명이 줄을 서 있다. 추가 저축은행 영업정지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불안한 마음에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영업점을 찾은 S저축은행 고객들이다. 이 저축은행 고객들은 질서정연(?)하게 본인들이 번호표를 만들어 나눠 가졌다.7시30분경 S저축은행 지점장이 나와 고객들에게 "정상영업을 하니 진정해 달라"며 "곧 정식 번호표를 나눠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들이 몰려들면서 분위기는 다소 험악해 졌다. 먼저 온 고객들이 스스로 만든 번호표는 의미가 없으며 저축은행에서 직접 배포한 번호표가 진짜라며 고객들 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이 저축은행 관계자가 8시20분경 재차 나와 고객들에게 "영업정지가 될 경우 4개월 정도면 매각 등의 작업이 끝나기 때문에 5000만원 이하 예금은 굳이 지금 찾을 필요가 없다"며 고객들을 안심시켰지만 고객들의 불안한 마음은 여전한 듯 했다. 이 지점은 9시 정각 업무를 시작해 9시 5분경 1번 번호표를 가진 60대 부부에게 돈을 내줬다.이 부부는 통장 2개를 모두 해지하고 원금과 일정의 이자를 받은 후 지점을 나섰다.같은 시간 이 은행 서울 대치동 지점 역시 고객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예금을 찾으러 왔다는 한 고객은 "5000만원 이하로 분산투자해 큰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고객 대부분이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보고 5000만원 이하 분산투자했다고 말했다. 오전 8시가 넘어가면서 이 지점을 방문한 고객 수는 60여명으로 늘어났다. 자신이 34년생이라고 밝힌 한 할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찾아왔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라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경영상태가 부실한 저축은행들의 추가 퇴출을 앞두고 불안을 느낀 예금주들이 4일 서울 강남의 한 저축은행 본점에서 항의를 하고 있다.

냉정을 잃은 고객들도 있었다. 일부 고객은 취재를 거부하며 기자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민감해진 고객들은 기자들이 지점 밖으로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이 저축은행 충무로 지점은 9시30분 현재 480번까지 번호표가 배포됐다. 새벽 6시에 나왔다는 50대 여성고객은 "아들 보증금을 내야 한다"며 돈을 꼭 오늘 찾겠다고 했다.다음달 딸을 결혼시킨다는 50대 남성은 "돈이 묶이면 안 된다. 꼭 필요한 돈인 만큼 오늘 찾아가야 한다"며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출근이 늦을 것 같다고 회사에 전화를 한 30대 남성 직장인은 "업계 1위라고 해서 안심하고 돈을 넣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프라임, 토마토저축은행 사태를 모두 겪었다는 또 다른 30대 남성은 "5000만원 이상 예금통장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만기가 지나 오늘 이자와 원금을 모두 찾아 갈 것"이라고 말했다.딸과 부인 등 총 3개의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70대 남성은 "연장한 지 불과 2일 됐는데..."라며 번호표를 뽑았다.오전 7시 서울 중구 회현동의 HS저축은행. 뉴스를 보고 놀라 아침 일찍 영업점을 찾았다는 60대 여성은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 왔다"며 "사람이 많이 몰릴 줄 알고 일찍 나왔는데 사람들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이 여성은 "5000만원 이하로 예금을 했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왔다"며 "영업점이 문을 열면 일단 돈을 찾겠다"고 말했다.8시경 이 지점을 방문한 한 50대 여성고객은 이미 다른 저축은행 지점에 방문해 번호표를 받아왔다고 했다. 5000만원 이하로 여러 곳에 분산투자했다는 이 고객이 보여준 번호표는 S저축은행의 한 지점에서 배포한 번호표였다. 이 고객은 "예금자보호를 받지만 돈이 묶이게 되면 불편해 돈을 뺄 생각"이라며 줄을 섰다.

경영상태가 부실한 저축은행들의 추가 퇴출을 앞두고 불안을 느낀 한 예금주가 4일 서울 강남의 한 저축은행 본점에서 예금자보호제도 안내문을 읽고 있다.

고객들이 계속 몰려들자 이 지점은 8시20분경 문을 열었다. 지점장이 직접 나와 "잘못 알려진 것 같다. 우리는 영업정지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자금 유동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고객이 인터넷에서 이름이 거론됐다고 하자 지점장은 고객과 함께 인터넷을 직접 검색하기까지 하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1년짜리 적금(연 5.4%)을 든 40대 여성은 고민 끝에 통장을 그냥 두기로 했다. 이 여성은 "8월 만기고 5000만원이 넘지 않아 돈을 찾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영업정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연신내 H저축은행 지점에도 이른 시간부터 고객이 찾아왔다. 아들과 함께 온 이 고객은 "2000만원 예금해 뒀는데 일단 돈을 뺄 생각"이라며 "앞으로 저축은행과는 절대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불안한 마음을 전했다. 찾아오는 고객과 문의 전화가 늘자 이 지점은 본점과 협의해 영업시간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이 지점은 8시20분부터 영업점 문을 열고 고객을 맞고 있다.M저축은행 서초지점에도 이른 시간부터 고객들이 찾아왔다. 지점 셔터 문이 굳게 잠겨 있어 후문을 통해 지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40대 한 고객은 "전세금 때문에 여유가 없어 해지하려고 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이 고객은 "저축은행측이 5000만원 이하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불안해 돈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9시 정각 영업을 시작한 이 지점에는 인출하기 위해 50여명이 찾아와 기다렸다. 이 지점은 9시30분 현재 4대 창구를 모두 열고 고객들을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이 지점 관계자는 "천천히 해도 오늘 다 찾아 갈 수 있다. 국가에서 5000만원까지 보장해 주니 걱정하지 말라"며 놀란 고객들을 진정시켰다.

경영상태가 부실한 저축은행들의 추가 퇴출을 앞두고 불안을 느낀 예금주들이 저축은행 창구에 몰려 있다.

특별취재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조영신 기자 ascho@<ⓒ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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