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길상호의 '붉은 마침표'

옐로스톤 들판 눈밭엔/발로 쓴 글이 어지럽습니다/쫓기는 새끼 엘크의 문장 뒤로/고요테들의 문장이 달리는데/얼마나 급하게 휘갈겼는지/쉽게 읽어낼 수 없습니다/눈 위에 흘려놓고 간/근육의 경련과 이빨의 독기 같은/아직 신선한 접속어를 주워/끊긴 문맥을 잇곤 합니다/거친 숨 고를 쉼표도 없이/치열하게 사건은 전개되다가/심장의 압박이 극에 달하는 순간/아쉽게 끝이 납니다/아마도 수북히 쌓인 눈이/엘크 발목을 잡았던 모양이지요/더 이상의 반전은 없다는 듯/그 자리 마침표 하나/붉은 피비린내가 선명합니다■ '동물의 왕국'같은 TV프로그램. 요즘 화산의 마그마가 부글거리고 있다는 옐로스턴. 미국 최대의 국립공원이 있는 그곳에, 작고 치명적인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승냥이같은 코요테가 사슴 종류인 엘크의 새끼를 쫓아가 잡아먹었다. 시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저 약육강식의 레이스를 담은 동영상이 아니라, 그 숨막히는 현장을 증언하는 기호들이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과 자취들. 급박한 질주는 문장이며, 근육의 경련은 접속어이며 수북한 눈에 발목이 빠진 엘크가 쓰러진 자리는 붉은 마침표이다. 이토록 살아있는 문장으로, 죽음까지도 서슬퍼런 문장으로, 우린 시를 쓴 적이 있던가. 그것을 질문하는 시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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