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1만800원'향수'라는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모순.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구석구석 끔찍한 얘기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모순이다. 이 책은 부제 그대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첫 장은 살인자가 태어나는 순간을 그렸다. 일단 그 장면부터가 진저리를 치게 만든다. 18세기 프랑스의 한 거리. 생선 좌판에서 대구 비늘을 손질하던 한 여인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지막 진통이 찾아오자 그는 도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아이를 낳는다. 그리곤 생선칼로 핏덩이의 탯줄을 끊는다. '향수'의 주인공인 살인마, 그르누이 그렇게 세상 빛을 봤다. 그르누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그는 웃지도 않았고, 눈을 반짝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냄새를 풍기는 법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르누이에게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 도망을 다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르누이는 1753년 9월1일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바람에 실려 온 한 소녀의 향기가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르누이는 망설임 없이 그 향기를 지닌 소녀를 찾아가 목을 졸랐다. 그 뒤엔 소녀의 머리카락과 얼굴, 가슴, 배, 다리, 발 등을 훑어 내려가며 향기를 맡았다. 그르누이의 살인은 계속 됐다. 그는 25명을 죽이고 나서야 체포됐다. 법원은 그르누이에게 나무 십자가에 묶어놓고 사지가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때린 다음 죽을 때까지 매달아 놓는 형벌을 내렸다. 이내 찾아온 사형 집행 날, 그르누이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건 바로 그 때였다. 그르누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다 정신을 놓고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광란의 밤이 이어졌고, 그르누이의 형 집행은 취소됐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지난 밤 있었던 일로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민망함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로 합의했다. 결론은 분명했다. 그르누이 대신 다른 누군가를 살인범으로 몰아 처형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살인 사건은 도미니크 드뤼오라는 인물을 교수형에 처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지켜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건 다름 아닌 그르누이였다. 그가 마지막에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는 여기 안 쓰려고 한다. '향수'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사람과 아직 못 읽어본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해두자. 다소 끔찍하긴 하지만 인간에 대해, 또 삶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게 바로 '향수'를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꼽은 이유다. 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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