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기술위원회의 불편한 약속

[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이번에도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았다. 선장을 잃고 표류하던 한국축구가 우여곡절 끝에 새 주인을 맞게 됐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대한축구협회가 21일 제9차 기술위원회를 열고 신임 국가대표축구팀 사령탑에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선임했다. 지난 8일 조광래 전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이 확정되고 약 2주 만의 일이다. 연내 후임 감독 인선을 마무리하겠다던 기술위원회의 공언은 이로써 일단락됐다. 이번에는 축구협회 규정도 충실히 따랐다. 축구협회 대표팀 운영 규정 11조 1항은 “대표팀 감독은 기술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술위원회 결과를 발표하는 황보관 위원장은 최강희 감독의 계약기간, 전북 감독과의 겸임 여부 등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감독을 추천만 하는 역할이다”라며 때늦은 절차를 강조했다. 진통 끝에 사령탑 선임이란 결과물은 낳았다. 그러나 허울뿐인 기술위원회의 실체가 또 한 번 만천하에 공개됐다. 애초 잘못 끼워진 첫 단추부터 말썽이었다. 갑작스런 전임 감독의 경질은 절차상 문제가 있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은 “적절한 절차를 밟고 있다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뒤늦은 변명을 했다. 대안 없이 일을 벌인 축구협회는 지난 13일 공석이던 기술위원직에 신임 기술위원 7명을 임명하고 첫 회동을 가졌다. 황보관 위원장은 뜨거운 관심 사항이던 후임 감독 문제에 대해 “오늘 기술위원회는 감독 선정과 관련한 기준안만 마련했다. 후보군은 다음 기술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반복했다. 이어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서는 기술위원들과 공유를 할 것이다. 정보에 대해서도 나눌 것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렇게 열린 두 번째 기술위원회는 이미 내정된 감독을 확인하는 형식적인 자리였다. 인선과정에서 약속했던 기술위원과의 협의는 없었다. 대다수 기술위원들은 전날까지도 최강희 감독의 내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에 대해 황보 위원장은 “사전에 기술위원들과 만나지 않았다. 오늘 처음 얘기가 됐다”라고 했다. 결국 위원장 독단으로 후보를 추천한 셈이다. 한창 이슈가 됐던 외국인 감독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황이 급박했다. 최우선 순위는 최강희 감독이었다”라며 유야무야 넘어갔다.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의혹만 키우면서도 황보 위원장은 “무슨 의혹이 있다는 것이냐”며 반문했고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제 역할을 다하겠다던 기술위원회에 대한 기대감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황보 위원장은 “최강희 감독이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사령탑이라는 지위가 그만큼 위상이 추락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기술위원회는 영광스러운 대표팀 감독직을 두고 명망 있는 지도자들이 고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천천히 되돌아봐야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첫 발을 내딛게 된 최강희 감독은 22일 오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대표팀 운영 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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