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장석남 '오동꽃'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다른 때는 아니고/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웠다고 생각하고/ 한참 만에 고개를 들면/ 거기에 오동꽃이 피었다// 살아온 날들이 아무런/ 기억에도 없다고/ 어떡하면 좋은가.../ 그런 평화로움으로/ 고개를 들면 보라 보라 보라// 오동꽃은 피었다 오오/ 무엇을 펼쳐서/ 이 꽃들을 받을 것인가장석남 '오동꽃'
■ 살아온 날들이 아무런 기억에도 없다. 이건 분명 평화로운 삶이다. 허무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린 언제나 평화를 꿈꾸어온 게 아니었던가. 무엇인가 가지려 하고 무엇인가 움켜쥐었던 날들은 잠깐 기뻤지만 평화롭지는 않았다. 그것을 놓아버릴 때는 모두 슬펐다. 모두 분하고 아팠다. 그것도 평화롭지는 않았다. 가지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들이 한참 지나간 뒤에야 평화가 온다. 오동꽃은 제 꽃을 그냥 버린다. 슬픈 표정도 없이, 마치 때가 되었다는 듯, 훌훌히 털어낸다. 나무는 꽃을 버렸지만, 우리는 꽃을 만난 셈이다. 버린 것과 만난 것이 다 한 가지의 일이니, 슬픔과 기쁨도 사실은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버림과 만남이 한꺼번에 이뤄지니, 최후도 이토록 평화롭다. 무엇을 펼쳐서 이 오동꽃 평생의 이야기들을 받아낼 것인가. 갑작스레 추워진 11월에 만난 오동꽃 하나의 떨리는 낙화. 그 허공의 길을 가만히 따라가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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