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논술시험과 학교 교육의 괴리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어떠하며, 만일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말해보라. 더불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과 인재를 올바로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해보라." 대학 논술 시험 문제가 아니다. 조선 명종 13년 과거 시험에 출제되었던 '책문' 중 일부이다. 약 54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하다. 그만큼 교육문제는 시대를 뛰어넘는 화두인 셈이다.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이 '책문'에 대해 우리는 이 시점에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사교육을 줄이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권고로 논술 전형 선발 인원과 비중을 줄이던 대학들이 일제히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최근 치러진 대입 수시 논술시험 문항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 대학 논술 시험에서 외국 학회 저널에 실린 영어 지문이 그대로 등장하고, 한 문제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수리 논술 문제가 등장했다. 수년간 갈고닦은 무기를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시험이라는 전쟁터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었을 수험생의 상실감과 연이은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대학의 고충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수험생 수만 명이 몰린 일부 대학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락을 가를 수 있는 변별력 확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변별력 확보를 위해 손쉬운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학교 교육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난이도 높은 논술 문항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칫 이것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는다면 학교 교육의 소외, 학교 교육과 대학 입시의 괴리는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는 단지 대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학 입시는 전 국민의 관심사이며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의 지형도를 삽시간에 뒤바꾸어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단계의 교육에까지 파도타기를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애초 논술 교육을 강화하고 대학 입시에서 논술 시험을 실시하게 된 것은 선다형 문항으로 평가되는 부분적인 지적 능력보다는 종합적인 판단력과 문제 해결력, 창의성을 중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또한 긴 호흡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교육적 관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지점을 고려하지 않고 논술 시험을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만 전락시킬 때, '논술'은 사라져버리고 앙상한 '시험'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미치는 대학의 영향력과 책무를 고려할 때, 논술 시험에서 대학이 노력해야 할 것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논술 문항의 구조화이며, 채점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채점 기준의 상세화 그리고 채점자 훈련이다. 대학은 입학 시험철에만 반짝 논술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논술 문항의 유형, 채점 방식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고민의 중심에 학교 교육을 통해 길러내야 할 인간상,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놓아야 하며, 또한 그것이 학교 교육에 견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공생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 이 책문에 대책을 내 놓았던 조중도(1537~1597)는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경쟁시켜서, 문맥이 대충 정해진 법식에 맞으면 등용하고는 의심하지 않으니, 이것이 과연 예의를 갖추고 서로 겸손하고 양보하는 도리를 가르친 것이란 말입니까? 학교가 쇠퇴해 진작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인재 등용을 위한 선발 시험과 학교 교육의 괴리를 우려했다. 이 조중도의 고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