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영의 눈]PO에서 김성근 감독이 떠오른 이유

크리스 부첵의 투구는 예상보다 빼어났다. 투구 수는 44개로 많지 않았다. 양승호 감독은 경기 전 이른 교체를 계산해놓은 듯했다. 그 시점은 탁월했다. 한계에 다다르기 전인 4회 1사에서 장원준을 마운드에 올렸다. 앞서 부첵은 최정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다음 타자는 박정권. 전 타석에서 안타를 쳐 자칫 위기에 놓일 수 있었다. 양 감독은 고민 없이 부첵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이는 정규시즌 통틀어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장원준은 병살타를 이끌어내며 팀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투수 교체는 그 뒤에도 모두 깔끔했다. 임경완은 2개의 아웃을 책임졌고 김사율도 1이닝 무실점으로 제 몫을 해줬다. 윤희상의 피칭 역시 놀라웠다. 통산 3승 투수라고 믿기 어려운 역투였다. 내년 성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주 무기인 포크볼은 롯데 타선을 곤란에 빠뜨렸다. 5회에는 노련미까지 뽐냈다. 1사 2루에서 김주찬은 안타를 때린 뒤 김강민의 홈 송구를 틈타 2루까지 내달렸다. 정상호가 빠른 송구를 위해 홈플레이트를 벗어나자 3루 주자 조성환은 바로 홈으로 쇄도했다. 하지만 0-0의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커버를 위해 홈 뒤에 있던 윤희상이 재빨리 홈으로 이동해 태그아웃을 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윤희상은 오른 검지에 부상을 입었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투수들은 태그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다. 위치 선정 등의 노하우를 알 턱이 없다. 포크볼의 위력은 검지 부상으로 공을 잡아채지 못해 크게 줄어들었다. 더구나 구질은 팔꿈치에 많은 부담을 가한다. 충분히 체력저하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만수 감독대행은 윤희상을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았다. 앞서 손아섭을 한 차례 삼진 처리한 까닭인지 계속 경기를 맡겼다. 안타를 맞아 결승점을 내준 뒤에도 그러했다. 다음 타자 전준우가 밀어 친 타구는 우익수 뜬공이 됐지만 충분히 안타가 될 수 있었다. SK는 6회 한 점을 더 헌납했다. 롯데전에 강한 이영욱이 이대호와의 대결에서 솔로 홈런을 얻어맞았다. SK에게는 뼈아픈 실점이다. 상대 4번 타자의 타격감이 부활해 이날 경기는 물론 5차전에서의 유리한 고지까지 내주고 말았다.
이후 롯데는 점수를 더 뽑을 수 있었다. 홍성흔이 우전안타를 때려 출루에 성공했다. 양승호 감독은 다음 타자 강민호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타격감이 좋지 않은 터라 작전은 적절해 보였다. 그런데 사인은 금세 뒤바뀌었다. 번트가 파울로 연결되자 이내 강공을 요구했다. 한 타석에서 작전을 한 번 이상 바꾸면 결과는 좋아지기 어렵다. 쓰리번트 아웃을 당하더라도 번트를 계속 밀어붙였어야 했다. 양 감독의 판단미스는 후속 황재균의 타석에서 한 번 더 나왔다. 볼카운트 1-0에서 히트앤드런 사인을 냈다.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타이밍에서 사용되어야 하는 작전. 그러나 양 감독은 이를 무시했고 경기를 더욱 어렵게 끌고나갔다. 야구 감독은 바둑 기사와 흡사하다. 상대가 돌을 놓을 곳을 미리 예측해야 한다. 최근 4년 동안 SK를 세 차례 우승시킨 김성근 감독은 이 점에서 달인이다. 숱한 경험으로 경기를 내다볼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플레이오프를 보며 그가 떠오른 건 두 감독 모두 더그아웃에서 일희일비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만으로 경기에 나선다면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결코 인연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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