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역은행'이 답이다" SC, 90% '그곳 사람' 쓴다현지화·M&A 노하우가 성장동력[홍콩=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 금융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위기 때마다 한국 금융의 빈약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은 한결같이 '글로벌 전략' 또는 '초대형 메가뱅크'를 외치고 있지만 국내 최대 은행의 규모는 세계 70위에 불과하다. 국민·우리·하나·신한 등 4대 시중은행은 총 22개국에서 86개의 영업점을 가지고 있는 게 전부다. 그나마 대부분이 중국과 베트남 등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다. 국내 은행들이 벤치마크할 대상은 어디 없을까? 이런 고민 끝에 아시아경제신문 금융부는 국내에도 진출해 있는 스탠다드차타드(SC)를 떠올렸다.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SC는 현재 70개국, 1700개의 지점에서 125개 국적을 가진 8만5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글로벌 은행과 달리 9년 연속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150년 전통을 바탕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이머징 마켓에서 펼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의 성공 때문이다. SC의 글로벌 전략을 '글로벌 지역은행이 답이다'란 타이틀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작년 영업이익 61억달러...세계 순위 36위로 수직 상승'동방의 진주' 홍콩은 아시아 금융의 심장부다. 홍콩의 랜드마크인 88층 국제금융센터를 비롯해 뱅크 오브 차이나 빌딩, 씨티뱅크 플라자와 같은 초고층 건물이 포진해있다. 골드만삭스 등 세계 100대 글로벌 금융 컴퍼니의 80%가 이곳에 모여있다. 2009년 기준 홍콩내 금융산업 비중은 국내총생산(GDP)대비 15.2%로 무역(19.2%)에 이어 GDP 기여도가 높다. 인구 700만명. 제주도 면적의 80%가 채 안되는 홍콩이 아시아 금융의 허브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의 자율성과 선진화된 금융시스템 덕이다.홍콩 금융의 축인 홍콩섬 센트럴 지역에는 스탠다드차타드그룹(SC) 홍콩 본점이 자리잡고 있다. SC의 심볼 '트러스트마크'가 박혀있는 좁고 높다란 42층짜리 SC홍콩 본점 빌딩은 '홍콩의 야경'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세계 70개국에 뻗어있는 SC 150년 역사의 중심축이 'SC홍콩'이다. SC의 태생은 영국이지만 전성시대를 이끈 곳이 홍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행, HSBC와 함께 3대 홍콩달러 발권 은행 가운데 하나고 2009년에는 설립 150돌을 맞아 세계 최초로 150달러짜리 지폐를 찍어내기도 했다. 중국의 부상과 위안화 국제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곳에서 SC홍콩은 SC가 진출한 70개국 중 꾸준히 가장 높은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다.◇세계은행 순위 수직상승=SC는 올해 금융전문지인 영국의 '더 뱅커(The Banker)'가 꼽은 세계 1000대 은행에서 36위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여섯 계단 상승했다. 국내 은행에서 가장 큰 우리금융그룹, KB금융그룹의 순위는 70위권이다. SC의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은 5165억달러(609조원)로 7년 새 덩치가 3.5배나 불었다. 한국의 제일은행은 인수하기 직전인 2004년 SC의 총자산 규모는 1471억달러(174조원)였다. 당시 국내 최대 은행이던 국민은행(1928억달러, 227조원)의 80% 수준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불과 7년이 지난 지금 그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당시 SC의 영업이익은 53억달러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160억달러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아시아 아프리카 등 되는 시장에만 올인=유럽발 위기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지만 SC는 올 상반기에 26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업계 예상치(23억달러)를 웃돈다. SC는 70개 국가에 1700여개의 지점을 갖고 있고 이중 80%는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 본사는 영국이지만 사실상 아시아ㆍ아프리카 은행인 셈이다. 제니스 리 SC제일은행 부행장은 "이익의 90% 이상이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온다"며 "이것이 미국과 유럽등 선진국이 중심이 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이고 SC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SC가 아시아ㆍ아프리카에서 강점을 갖게 된 것을 설명하려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야기해야 한다.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식민지배를 확대해 갔다. 식민지배에 있던 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차례로 독립했지만 영국은 과거 식민지 국가에서 채집한 방대한 정보와 네트워크 등 현지화 노하우를 버리지 않았다. 예컨대 SC는 1993년 패트릭 질람 경(卿)의 회장 취임을 성장의 전환점으로 꼽는데 질람 경은 영국과 북미 지역의 영업망을 이용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사업을 확대한 대표적 인물이다. 본사가 있는 영국에는 지점이 없지만 북한을 뺀 모든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에 지점을 둘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교두보를 쌓은 것이다. 줄리안 퐁 SC아시아지역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이 같은 정서를 "우리에게는 돌아갈 '본국'이 없다. 아시아가 우리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핵심전략은 현지화=SC가 아시아 등지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김진겸 SC 동북아지역 총괄헤드는 '체계화된 현지화 전략'을 꼽았다. 진출할 국가의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사전에 철저히 파악하고 현지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SC의 '글로벌 전략'이란 것이다. SC는 해외법인의 90% 직원들을 현지 채용한다. 같은 상품도 나라마다 고객들이 원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이를 가장 잘 아는 게 현지 직원이라는 이유에서다. 1700여개 지점 직원 8만5000여명의 국적이 125곳에 달할 정도로 글로벌화 돼 있다.◇M&A는 피흘리지 않고 이기는 싸움=SC는 1969년 스탠다드은행과 차타드은행의 합병으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그 만큼 인수·합병(M&A)의 역사나 노하우가 깊다. 그런 점에서 SC 성장의 견인차는 철저한 분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M&A라고 할 수 있다. SC는 최근 10년 동안 20여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사시켰다. 2000년에는 인도 ANZ그랜들래이뱅크를 13억4000만달러에 사들였고 이 은행은 인도와 남부아시아의 중심은행으로 컸다. 2005년에는 제일은행 인수를 성사시켰고 이듬해에는 대만 신추은행과 파키스탄 유니온뱅크, 2007년에는 미국 아메리카익스프레스뱅크를 차례로 집어 삼켰다.SC가 인도에 진출한 것은 150여년 전 뭄바이지점 개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인도에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을 불과 몇 해 전부터다. 지난해 인도는 홍콩을 제치고 12억달러의 세전 이익을 달성한 곳이기도 하다.국내은행, 세계 70위권..아직은 걸음마단계국내 대형은행들이 활발한 해외진출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수익원을 다각화하자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점포수가 한때 257개까지 이르면서 활발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 사태' 등으로 대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해외 점포가 문을 닫는 등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유럽발 재정위기로 다시 주춤한 상태다.국내 은행들의 해외진출 수준은 최근 경영실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와 KB금융ㆍ신한금융지주 등 국내 3대 은행그룹의 지난해 말 전체 영업이익 대비 해외 영업이익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스위스, 호주 등 10개국 3대 은행그룹 평균(37.4%)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다. 해외 영업이익 비중은 독일(80.4%)과 스위스(66.3%), 영국(57.4%) 등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가 안되고 아시아계인 일본(20.7%), 중국(8.6%)의 대형은행에 비해서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말 창립기념식에서 "해외진출을 활발히 하려면 관련 직원의 90% 이상을 외부에서 뽑아와야 하는데 직원들이 동의하겠냐"고 말했다. 해외시장 진출에 필수적인 글로벌 인재의 필요성에 대해 반문한 것이다.단기간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수ㆍ합병(M&A) 전략도 만만치 않다. 국민은행은 강정원 행장 시절 투자했던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부실로 수천억원 대의 손실을 봤고 우리금융은 올해 공 들였던 LA한미은행 인수에서 좌절을 맛봤다. 해외은행 M&A의 부정적 '학습효과'만 쌓은 셈이다.이에 대해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시장에서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은행만의 전문분야를 발굴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에서 경쟁력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금융, 선박금융, 원자재 트레이딩, 벤처캐피탈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홍콩=조목인 기자 cmi0724@<ⓒ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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