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만 채플린' 고난도 즐기는 달인 김병만
달인의 끝은 어디인가. KBS <개그 콘서트>에서 수년째 ‘달인’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김병만은 외줄 타기, 외발 자전거 타며 밥 먹기, 사다리 곡예까지 매주 기예단의 묘기에 가까운 미션을 수행한다. 거기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진다 싶으면 장수 코너도 칼같이 폐지하는 <개그 콘서트>에서 ‘달인’은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후반부 자리를 여전히 놓치지 않는다. “‘달인’ 같은 경우는 PD님께 코너 검사 받고 통과해도 끝이 아니에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계속 생각해요. 사람들이 안 웃으면 어떻게 애드리브를 할까, 더 재미있는 건 없을까 고치고 또 고치죠. 갈수록 무대 위에서는 편하고 즐겁지만 준비 시간은 더 길어져요. 어제도 자다가 생각난 아이디어가 있어서 수제자한테 전화해서 메모해 놓으라고 했어요. 그새 까먹을까봐.” 김병만이 ‘달인’ 코너만으로 3년 연속 ‘연예 대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SBS <일요일이 좋다> ‘김연아의 키스&크라이’에서도 “수도 없이 무거운 걸 들면서 연습한 리프트”가 실패하자 스태프들에게 “오늘 이거 성공 못하면 다들 집에 못가십니다”라고 못 박을 정도로 앞뒤 안 가리고 끝까지 해보는 뚝심 덕분이다. 그리고 그 뚝심은 김병만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서는 무대”에 올려놓았다. “제가 경연에서는 2등을 했지만 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스 쇼 자체를 진심으로 즐겼거든요. ‘다른 선수들이 멋있게 탄다면 나는 재밌게 타자. 나는 코미디언이니까’라는 마음으로요.” 마지막 아이스쇼에서 아이스링크에 난입한 찰리 채플린이라는 콘셉트부터 안무와 스토리를 짜고, 음악까지 직접 선곡한 그가 만든 무대는 만 명에 달하는 관객들에게서 웃음을 끌어냈다. 김병만에게 “피겨라는 장기”를 또 하나 추가할 수 있게 한 영화부터 찰리 채플린, 주성치 등 그가 흠모하는 희극배우의 영화까지, 그가 눈물과 웃음으로 말하는 영화들을 골랐다.<hr/>
1.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1997년 | 로베르토 베니니“너무 감명 깊게 본 영화예요. 전쟁 중인데다가 희망도 없고 주위는 온통 공포뿐인데도 아버지는 자기 아이를 위해 죽기 직전까지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와, 정말 극한 속에서 코미디를 하는구나!’하고 감동했어요. 실제로 저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익스트림하게 부성애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보면서 웃기도 했지만 많이 울컥했어요.”사랑은 때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지옥, 홀로코스트를 즐거운 놀이터로 만든 이 아버지처럼.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지만 마지막까지 그는 웃어 보인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오열하지 않으면서 보는 이들을 울렸다. 제 5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2. <쿵푸 허슬> (Kung Fu Hustle)2004년 | 주성치“가정이 윤택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던 친구들보다 불우했던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기 때문에 웃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쿵푸허슬>도 굉장히 가난한 집들이 배경인데 그게 주성치의 어린 시절 풍경이라고 하더라구요. 정말 못 살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주인공은 찌들지 않고 남한테 맞아도 당당하고 상처받지 않잖아요. (웃음) 뒤돌아서서 웃을 수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훈훈함 속에서 코미디가 더 나오는 거 같아요.”명색이 건달인데 가는 걸음 걸음 가련하고, 대적하는 족족 무릎을 꿇고 코피를 흘린다. 돼지촌에 한 몫 잡으려 들어간 싱(주성치)은 마을 곳곳에 숨겨진 고수들에게 된통 당하고 만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은둔 고수들을 묘사하고, 악당 캐릭터마저 익살스럽게 요리한 주성치의 솜씨는 역시 희극지왕답다.
3. <키드> (The Kid)1921년 | 찰리 채플린“찰리 채플린이 여자한테 구애하는 장면은 ‘김연아의 키스&크라이’에서 안무 짤 때 참고를 많이 했어요. 아이스 쇼에서는 안무랑 스토리를 제가 생각했는데 <모던 타임즈> 음악을 깔고 중간에 <키드>에서 찰리 채플린이 경찰한테 쫒길 때 나왔던 음악을 넣었어요. 찰리 채플린 영화도 서민들 이야기예요. 공장 문을 닫고, 일거리가 없어서 어렵지만 기죽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좋아요. 버스터 키튼이 이소룡이었다면 찰리 채플린은 성룡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소룡은 멋있고 백 번 싸우면 백 번 다 이기는데 성룡은 이겨도 어렵게 이기잖아요. (웃음)”찰리 채플린의 몸짓에는 슬픔이 담겨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그의 얼굴은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연기를 할 때조차 진한 비애감을 자아낸다. 공장 노동자나 이발사, 실업자 등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했던 그는 <키드>에서도 외로운 떠돌이로 버려진 아이와 만나 따뜻하지만 결국 눈물이 고이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4. <용형호제> (Armour Of God)1986년 | 성룡“<홍번구>에서 성룡이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 하는 것도 따라 해보고, 그가 하는 몸짓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따라했어요. 성룡의 영화는 스토리보다 그 사람의 개인기 위주로 보는데, <용형호제>를 찍다가 성룡이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물론 제가 그렇게 부상을 당한 적이 없어서 얼마나 아픈지 짐작은 못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도 영화에 출연해서 저렇게 몰입하다가 저런 영광의 상처 가져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정말 영광이겠다’ 하고요.” 달리는 버스에 매달리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성룡의 액션은 코믹에 능한 그의 이미지 때문에 묻히기도 하지만 그는 그야말로 목숨 걸고 영화를 찍는다. 그러니 성룡의 다른 영화들처럼 <용형호제>의 엔딩 크레딧 또한 꼭 챙겨보길 바란다. 웃음을 주는 깨알 같은 ‘NG모음’부터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부상 투혼까지 그의 진짜 모습은 엔딩 크레딧에서 발견할 수 있다.
5. <못 말리는 람보> (Hot Shots! Part Deuxd)1993년 | 짐 에이브러햄스 “<못 말리는 람보>는 한 30번 쯤 봤어요. 왜 그렇게 많이 봤냐면 찰리 쉰의 연기, 특히 눈빛을 보느라 그랬어요. 그 눈빛이 너무 진지하거든요. 사실 뻔한 내용이고 어떻게 보면 유치한데 그걸 찰리 쉰의 연기로 다 커버하죠.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매번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와요. 코미디를 앞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저 멀리 엑스트라들도 하고 있어요. 한 번 볼 때는 몰랐는데 두 번, 세 번 보면 정말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저도 저만의 코미디를 만들게 되면 그렇게 철저하게 하고 싶어요.”‘못 말리는’ 시리즈는 <드라큘라>부터 <첩보원>, <비행사>, <람보>까지 90년대 비디오 대여시장을 휩쓸었다. <못 말리는 람보>는 전작인 <못 말리는 비행사>의 성공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람보>, <터미네이터>, <원초적 본능>, <스타워즈> 등을 쉴 새 없이 패러디하며 잘생긴 외모에도 다소 어리바리 했던 찰리 쉰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hr/>
“주성치는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작은 행동들을 관찰하면서 소재를 모아간다고 해요. 저도 언젠가는 저만의 코미디를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모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단편영화처럼 꼭 상업적이지 않더라도 실험적인 코미디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아직은 많이 배워나가야겠지만 제작에도 꿈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마지막까지 희극배우로 존재하고 싶죠.” 이미 달인으로 새로운 코미디를 개척한 김병만의 최종 목표는 희극배우로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쥴리의 육지 대모험>에서처럼 목소리 연기나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김병만의 마지막은 자신만의 코미디 영화다. 달인으로 시작해 피겨 스케이팅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정복해나가고 있는 그가 최종적으로 만들게 될 코미디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하다.<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매거진팀 글. 이지혜 seven@사진팀 사진. 이진혁 elev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