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슬기나기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9년 11월 중국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중국 전국인민 정치협상회의(정협, 政協)를 방문해 자칭린(賈慶林) 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I 내향= 정 회장은 대중에 나서는 것보다 1대 1이나 소규모 만남을 즐겨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넓은 인맥보다는 소수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타입이다. 혼자 사색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 집무실에 출근하면 일에만 매달리고 외부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정 회장은 화려한 말솜씨를 가진 '달변가'는 아니다. 오히려 대중에는 말솜씨가 어눌한 편으로 유명하다. 실제 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도 논리 있는 연설을 전개하는 것보다는 묵직한 한 마디를 던지는 편이다.내향형은 1대 1이나 소수와 만날 때 마음이 편하고, 여러 사람 앞에 나설 때 매우 불편해 한다. 정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언변에 서투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 같은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 회장과 독대한 다수 인사들은 평소 알려진 것과 대조적인 그의 부드러운 화법을 인상적인 면으로 꼽곤 한다. ◇N 직관= 정 회장은 호기심이 많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의 현대자동차그룹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는 임원회의 등의 자리에서 미래형 발언을 빼먹지 않는다. 품질경영, 디자인경영 등 화두를 던지고 10년 뒤를 언급한다. 모두가 공장 건설을 반대할 때 추진하고, 공장 증설을 제안하는 임원들에게 '이제는 품질로 간다'고 제안하는 식이다. 신기술에 대한 관심, 미래지향, 비범한 직관력 등 이는 모두 직관형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히는 내용들이다. 임흥수 현대위아 대표는 “처음에는 임원들도 의아해하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치며 '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다. 노재만 베이징현대 사장 역시 “그룹 총수들만의 DNA가 있는 것 같다”며 “큰 그림을 보는 동물적 직관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말했다.정 회장이 대화를 꺼낼 때는 주제가 순차적으로 전개되기보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섞여 동시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측근들의 언급이다. 이 또한 직관형의 대표적 특성이다. ◇F 감정= 정 회장은 불같은 성미로도 유명하다. 한번 화를 낼 때는 불같다는 평가다. 하지만 직접적인 질책보다 돌려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례로 임원들을 야단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식사자리, 전화 등을 통해 다독거리곤 한다. 단 둘이 있을 때는 “꾸짖어서 섭섭했어?”라며 등을 두들기기도 한다는 것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한 CEO의 전언이다. 올 초 정 회장은 4주 연속 주말마다 골프장을 방문했다. 평소 골프를 즐기지 않는, 그 답지 않은 행보였다. 측근들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정 회장의 방문은 골프장 내 부실공사로 인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관리자를 불러 따끔한 야단을 치기보다는 특별한 언급 없이 해결되도록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손자들이 집에서 놀 때 가구의 모서리에 부딪칠까 봐 모서리마다 천을 직접 둘러준 일화 등은 전형적인 감정형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양웅철 부회장은 정 회장에 대해 “강하고 약한 부분을 짚어낼 줄 알고, 세심한 배려가 있다”며 “회의에서도 주제와 관련된 부문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편”이라고 전했다. 단 정 회장은 그룹 총수가 되기 위한 경영자 수업을 줄곧 받았던 탓에, 경영행보에서는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고형 특성도 나타난다는 평가다. ◇J 실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닮은 점 중 하나는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밀고 나가는 뚝심과 추진력이다. 이른바 '불도저'로 불리는 이들 부자의 추진력은 실천형(판단형)의 주 특성이다. CEO가 툭 던진 한 마디가 바로 실행에 옮겨지는 현대의 분위기는 이를 잘 드러내준다.실천형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일단 결정된 사항을 끝까지 추진한다. 계획에 따라 사고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도 실천형의 특성이다. 규칙적인 생활도 대표적인 면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일흔이 넘은 지금도 새벽같이 양재동 집무실에 나와 업무를 본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면도 실천형에 가깝다. 재계 2위그룹의 오너총수인 정 회장은 정재계 귀빈을 초청한 자리에서는 기자들 근처로도 자리하지 않을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나 기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될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청운동 시절에는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새벽 늦게 퇴근해도 늘 맞이해 인사를 거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명예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정 회장은 늘 부친의 한 걸음 뒤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