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사진 정재훈사진기자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날아가 버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사실 박재명에게 기회는 한 번 더 있었다. 지난 14일 충북 보은에서 열린 추계 중고육상경기대회 번외경기다. 그는 과감하게 도전을 포기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박재명은 이렇게 말한다. “(정)상진이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다. 패배를 인정한다. 후배의 선전을 기원한다.”때 묻은 창을 영영 내려놓는 건 아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새 목표를 세웠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박재명을 만나 불발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 품은 희망을 들어봤다. 또 한국 창던지기의 오늘과 내일도 함께 짚어봤다. 다음은 박재명과 일문일답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이 불발됐는데. 박재명(이하 박) 솔직히 많이 아쉽다. 지난해부터 대회를 준비했다. 그간 해온 대로 열심히 운동에 매진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해 안타깝다.스투 선발전이 여느 때보다 박빙으로 전개됐다. 박 이전까지 국내 경기를 뛰며 긴장해 본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후배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매 경기에 임했다. (정)상진이의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 좋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스투 이번 대회를 열심히 준비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박 한국나이로 이제 31살이다.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노장’이라는 말을 자주 꺼낸다. 그게 싫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스투 그간 에사 우트리아이넨, 카리 이하라이넨 등 핀란드 출신 코치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박 모두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을 줬다. 우트리아이넨은 핀란드의 육상 영웅이다. 가르침 덕에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하라이넨은 우트리아이넨의 친구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유러피언선수권대회 등에서 핀란드대표팀에 13개의 메달을 안겼을 정로도 탁월한 지도력을 자랑한다.박재명(왼쪽)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창던지기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에사 우트리아이넨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사진 출처=대한육상연맹)
스투 일부 육상 관계자들은 외국인 코치의 지도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 이유로 서구 선수들과의 다른 체격이 자주 거론되는데. 박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트리아이넨과 이하라이넨은 정형화된 방법을 가르친 적이 없다. 개개인의 신체 특성에 맞는 다양한 무기를 제시한다. 물론 그들의 교육에도 모두에게 적용하는 기본 틀은 있다. 창던지기에 필요한 밑바탕 다지기다. 차별화는 그 다음 이뤄진다. 개개인의 특성에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맞춤 형식으로 적용시킨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상급 기량을 갖춘 북유럽선수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더 이상 그들은 특유 힘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다양한 기술 습득을 통해 세계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스투 태릉선수촌에 입성한지 13년째를 맞았다. 박 그간 태릉선수촌에서 지내며 많은 후배들을 떠나보냈다. 사실 그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자주 발탁돼 성장을 막은 것 같다. 스투 잦은 발탁 탓에 가족들을 자주 보지 못할 텐데.박 올해 초 아들 지환이를 얻었다. 아내가 혼자 두 자녀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애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좋은 점도 있다. 스투 그게 무엇인가.박 아내를 자주 보지 못하다보니 만날 때마다 애틋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연애 때보다 더 많이 설레고 그리워하고 있다. 스투 아내도 체육인인가.박 아니다. 전공이 무용이다. 최근 육아로 바뀌었지만(웃음). 한국체대 석사과정을 밟으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첫 딸 지우의 탄생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가장 그러하다. 2008년 6월 5일 대구에서 경기 도중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3차시기를 대충 마치고 부리나케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분만실에 들어간 뒤였다. 수성 톨게이트를 막 지나는데 출산 소식이 들렸다. 병원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4시간 뒤였다. 당시 장인어른의 헛기침을 잊을 수가 없다(웃음).[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스투 광경을 보며 많이 부러웠을 것 같다. 박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블링 카니발이다. 창던지기 축제인데 유럽 최고의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노하우를 교류하고 화합을 다진다. 당시 들었던 세계기록 보유자 얀 젤레즈니(45체코)의 말이 생각난다. 노하우를 묻는 몇몇 선수들의 질문에 “스피드, 지구력, 리듬감을 모두 키워라”라고 답했다. 세계기록을 꽤 오래 지키고 싶은 듯 보였다(웃음).스투 창을 처음 잡은 건 언제인가.박 평창 대화중학교 3학년 때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을 배웠는데 이전에 소화한 멀리뛰기, 달리기 등을 전문적으로 알려줄 코치가 없었다. 산속에 위치한 시골학교였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창을 쥐게 된 건 친구 김한기의 권유 덕이다. 그의 소개로 육상부에 들어갔는데 마침 원반던지기 국가대표를 지낸 김춘희 선생님이 기간제로 학교에 머물게 됐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열심히 훈련해 그해 강원도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덕에 강원체고에 진학할 수 있었고 전문적으로 창던지기 기술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스투 창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박 처음에는 하늘을 찌르는 창의 모습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창이 좋다. 뭔가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내가 지금 창을 던지는 이유다.스투 앞으로도 창을 놓지 않을 것 같다. 박 창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 고마움에 꼭 보답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차근차근 준비하겠다. 고마움은 그 뒤에 전달해도 늦지 않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스포츠투데이 사진 정재훈 사진기자 roze@<ⓒ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