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만화축구’가 더 나은 만화축구에 속절없이 당했다. 2002년의 4강 업적, ‘아시아의 맹주’를 자임해온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려준 한일전의 내용과 결과였다. 쉽사리 잊히기 어려운 패배로 기록될 한일전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을 적어본다.조직적 압박의 결여조광래 감독이 천명하는 만화축구를 위해서는 기본들이 잘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적인 압박은 기본이다. 간격과 질서를 고려하면서 여러 명의 선수가 더불어 공간을 통제해야 한다. 한두 명이 개별적으로 쫓아다니는 압박은 수준급 상대의 패스워크에 의해 쉽게 벗겨질 뿐 아니라 아군의 대형만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곤 하는 까닭이다. 한일전에서 나타난 조직적인 압박의 부재는 일본으로 하여금 경기 내내 편안한 공격을 펼치게끔 했다.볼 통제에 실패다소 낮은 지역에 수비 라인을 설정하면서 역습을 노리는 것은 전략적 판단의 문제다. 하지만 수비 라인을 뒤로 물리더라도 최소한 수비형 미드필드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볼을 통제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다보니 대표팀은 지속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습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전체적으로 무거운 움직임볼을 소유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막론하고 대표팀 선수들의 몸놀림은 전반적으로 무거워보였다. 움직임이 무디다보니 조직적인 압박과 세밀한 탈압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볼 줄 곳을 찾기도 마땅치 않은 가운데 무리한 드리블과 패스가 반복되며 볼의 소유권은 자주 일본 쪽으로 넘어갔다.수비 조직력 미숙일본의 공격에 수비진이 빠르게 노출된 건 앞 선에서부터 압박이 잘 되지 않은 탓이다. 수비수들 자체의 조직력도 문제였다. 특히 동료가 비우고 나간 공간을 적절히 메워주는 커버플레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측면 수비의 위치 선정 또한 적절치 않은 경우들이 있었고, 민첩한 일본 선수들을 제어할 만한 순발력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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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 떨어지는 선수기용벤치의 용병술 또한 팀 전체의 무딘 움직임을 부채질한 면이 있다. 실전 감각이 떨어질 법한 선수, 리그 경기 뒤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할 공산이 큰 선수, 소속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지 못한 선수들로 라인업이 구성됐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과 덜 어울리는 포지션에서 뛰기도 했다. 이전의 평가전을 통해 예방주사를 맞아본 적 없는 신예들도 부담스러운 한일전을 통해 데뷔를 했다. 이름값 의존 및 지나친 창의성이 합리성을 떨어뜨린 셈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선수 교체의 타이밍에도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박지성과 이영표는 더 이상 대표팀에 존재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청용은 당분간 활용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지동원, 손흥민 등의 부재를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대표 팀은 완벽한 구성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들마다 완벽한 베스트 멤버를 가동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중앙 수비의 전통적 듀오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와 나카자와 유지 없이 아시안컵을 차지했으며 이번 한일전에서도 나가토모 유토의 공백을 무난하게 메웠다. 주력 선수의 공백과 이탈에 대처 가능한 대표 팀이 되어야 한다.기본기 중시 풍토 조성하자전술과 조직, 컨디션의 문제를 떠나 이번 한일전에서 가장 뼈아팠던 대목은 기본기의 차이였다. 좁은 공간에서의 볼 컨트롤과 세밀한 패스 연결, 득점 기회에서의 침착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우리보다 한발 앞선 기본기를 과시했다. 모든 팀이 압박과 수비에 신경을 기울이는 최근 축구 풍토에서 역설적이게도 세밀한 기본기야말로 좋은 성적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것이 결여된 팀은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기 어렵고 역습의 효율성을 높이기도 쉽지 않다. 이제 한국 축구계도 ‘과정 무시, 결과 중시’의 문화를 벗어던지고 어린 시절부터 기본기를 충실히 익힐 수 있는 풍토와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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