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독일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더 리더'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나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기보다는 책 읽어주는 '소년'에 가까운 열다섯 살의 이 주인공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 많은 한 여인에게 '오디세이' 등과 같은 작품을 읽어줍니다. 소년이 여인에게 읽어주는 책의 수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감도 커져갑니다. 책을 함께 읽으면서 마음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도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더 리더'의 소년과 달리 책 읽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었지만 조선 시대에 있었던 책 읽어주는 남자도 사람들에게 교감을 선물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문맹률이 높았고, 책을 사서 보거나 빌려서 볼만큼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그 때에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남자. 전기수라고 불리는 이 남자의 주변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전기수는 그렇게 다 같이 모여 책을 읽는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전기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책 한권을 함께 읽으며 이들이 마음을 나누던 예전과 반대로 이젠 고독한 독서의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혼자서 책을 마주하고 앉아 독서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함께 책을 읽는 낭만 그리고 교감이 사라진 요즘, 안중철 후마니타스 편집장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머뭅니다. 며칠 전 서울 마포구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만난 안 편집장은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책들을 전자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오지만 우리는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 생각이 아직 없다"고 했습니다. 사회과학 책들은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이 읽고 토론을 할 때 참된 값어치를 발휘하기 마련인데, 이 책들이 전자책으로 만들어지면 후마니타스의 편집 방향과도 완전히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민이 깊어 보였던 안 편집장은 책다방을 나서기 전 "사회과학 책들이 전자시장에 많이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함께 책을 읽는 문화가 사라져버린 게 안타깝다"며 쓴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갖가지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던 전기수가 부쩍 그리워집니다.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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